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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Aug 19. 2020

내게 지켜야 할 게 있다는 것은

<다만 악에서..>, <오케이 마담>, <강철비2> 한여름의 영화 원정기

잠잠해지는 듯했던 코로나19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여름장마처럼 자취를 감췄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은 걸 보니 꽤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모처럼 유통·문화·여행 업계에 붐을 일으키려 준비했던 임시휴일 지정이나 할인행사 등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돼 안타깝습니다.


지난 주말 문득 ‘이번엔 꼭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생각이 7개월 만의 영화관 외출로 이어졌습니다. 상영관 맨 뒷자리에서 오전 8시부터 이어진 세 편의 한국영화 관람! 10여 년 전 방문했던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극장에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영화를 본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소식에 섬뜩하기도 합니다. 이제 극장 방문은 장기간 없을 듯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케이 마담>,

<강철비2: 정상회담>. 

2020년 8월, 모처럼 극장을 방문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 다시 IPTV로 복귀해야 할 것 같습니다ㅠ.ㅠ

이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황정민과 이정재, 엄정화, 정우성 등 딱 제 청년시절 때 (물론 ‘지금도’입니다만) 잘 나갔던 배우들이 주연인 세 편입니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느껴졌을까요? 왠지 더 끌렸고, 세 편 연속해 봤으면 조금 졸았을 법도 한데 그런 일 없이 작품에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칼을 엄청 잘 다루고 사람 죽이는 게 특기인 두 남자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주인공입니다.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의 암살자 인남. 마지막 청부살인으로 야쿠자 보스를 죽이고 파나마로 떠나려던 그에게 서울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8년 전 급히 도피하면서 헤어졌던 애인이 딸을 낳고 살다 태국에서 피살당했다는 것. 한편 인남이 죽인 야쿠자 보스에겐 ‘백정’이라 불리는 동생 레이가 있었습니다. 형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그는 복수를 다짐합니다.

전 애인과 딸의 원수를 갚으려는 인남, 하나뿐인 형을 죽인 이를 응징하려는 레이! 살인기계 같은 둘의 만남과 사투가 태국에서 이뤄집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속 레이 역을 맡은 이정재. 등장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그는 역시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오케이 마담> 주인공은 영천시장에서 꽈배기를 만들어 파는 미영입니다. 조그만 전파상을 운영하는 남편, 딸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그녀에게 하와이 가족 여행권 당첨 행운이 찾아옵니다. 살림살이에 보태고자 여행권을 매각하려다 ‘해외여행이 소원’인 딸을 위해 하와이로 떠나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마침 10년 전 종적을 감췄던 북한 공작원 목련화가 이 비행기에 탄다는 정보를 들은 북한에서도 요원들을 파견합니다. 미영이 화장실에 간 사이 비행기를 접수한 북 테러리스트들... 이제 오케이 마담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오케이 마담>의 주인공 부부. 홍콩영화 <예스 마담> 같은 (오락이 가미된) 액션이 펼쳐집니다.

북미 평화협정을 위해 원산에서 미국과 북한, 한국 세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원산에 모이는 것으로 <강철비2: 정상회담>은 시작됩니다. 북한과 미국 정상의 대립으로 회담은 진전되지 않고 우리나라 대통령의 마음이 타 들어갑니다. 그 사이 핵무기 포기와 평화체제 수립에 반발하는 북 호위총국장의 쿠데타가 터지고, 인질이 된 세 정상은 북한 핵잠수함에 갇히게 됩니다. 세 정상과 호위총국장이 나누는 대화를 타고 감춰져 있던 일본의 음모가 드러남과 동시에, 뒤늦게 북 위원장의 현장 지도가 아닌 쿠데타임을 알게 된 잠수함 속 북한군들의 동요가 발생합니다. 세 정상은 별 탈 없이 살아 돌아와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까요?

<강철비2: 정상회담>의 주요인물들. 전작과 국적(?)을 바꾼 정우성과 곽도원, 새 역할도 잘 어울립니다!

일단 세 영화 모두 보는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아이 찾아 삼만리 풍’의 <레옹>, <테이큰> 같은 영화에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신세계>를 합쳐놓은 듯하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이 나타내는 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매력입니다. 특히 (그저 15세 관람가에 맞추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잔인한 장면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두 주인공의 무자비함이 전해지도록 편집한 게 인상적입니다. 관객의 상상력을 더할 틈을 줬다고 할까요? 그리고... 박정민 배우에게도 깜짝 놀랐습니다!^^     


딱 엄정화표 코믹무비인 <오케이 마담>! ‘기대 이상의 무엇이 없다’거나 ‘돈 내고 보기 아까웠다’ 등의 리뷰도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폭소를 터뜨렸던 <극한직업>만큼은 아녀도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가 있었고, 소소한 반전들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진지한 두 편의 작품 사이에서 기분 좋은 브릿지 역할을 했다고 할까요? 다만 아내는 생각이 조금 달랐는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정말 짧게 느껴졌는데, 이 영화는 다소 긴 듯하다”고 말하긴 했습니다.     


<강철비2: 정상회담>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번지르르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일 수밖에 없는 처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내야 하는 상황을 배우 정우성이 잘 표현해냈습니다. 곽도원이나 유연석 역시 역할에 맞는 연기를 했고요. 얄미운 미국 대통령 역을 소화해낸 배우도 기억에 남습니다. 반일사상과 애국심 고취 의도가 다분한 권선징악형 구성이 다소 현실감을 떨어뜨리지만, 이쯤 하면 참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 듭니다.      


무엇인가 절실하게 지킬 게 있는 사람은 참 강합니다.

가족의 원수를 갚겠다는 시작은 비슷했을지 몰라도, ‘딸을 반드시 구하겠다’는 목적을 기억하는 인남은 ‘이유는 잊은 지 오래’가 된 살인마 레이와는 다릅니다. 테러리스트 무리에게서 남편과 딸을 지키겠다는 미영은 오래전 전성기 때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꼭 평화협정을 맺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결의는 양극단의 인물을 화해시키고,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를 낳습니다.

아껴 보호해야 할 누군가를 향한 목적의식은 단지 나를 위한 행동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하고, 결국 기적으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목숨 걸고 인남을 도운 트랜스젠더, 그냥 전파사 사장이 아니었던 남편, 호위총국장에게 반기를 들었던 잠수함 부함장 등은 ‘지킬 대상을 위해 헌신하는’ 주인공에게 신이 내려준 선물입니다. (그런 측면에선 김남길 배우의 역할은 다소 아쉽습니다. 물론 우정출연 배우에게 더 바랄 것은 없습니다!^^)     

세 편의 영화 속 인상적인 배우들을 보는 맛이 있습니다. 다만 <강철비2> 미국 대통령 역 맡은 배우의 저 사진은 쫌...

저는 실제 우리의 삶에는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극적인, 기적 같은 선물이 준비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는가가 문제고, 말처럼 쉽지 않은 결단과 행동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게 진짜 어려움이지요. 제가 절실하게 지키고 보전해가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마음은 벌써 파나마와 하와이에 가 있는데, ‘통일로 가는 길은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정말 통일할 거냐’고 묻는 정우성의 얼굴이 떠올라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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