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군가 내게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를 물으면 하나 꼽기가 어려웠다. 본 영화도 딱히 많지 않았는데, 우뢰매나 태권브이보단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 나온 것 정도로 대답해야한다고 긴장했었나 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분모 숫자가 엄청나게 늘었지만 한 편을 말하는 게 어렵지 않다. 대학교 2학년 때 이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던 것 같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곧 <시월애>와 <유브 갓 메일>도 다룰 예정인 걸 보면 편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내 타입이었던 것일까? 아무튼 <러브레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처음 만난 일본 영화였다. (물론 텔레비전, VTR을 통해 더빙판 애니메이션들은 꽤 많이 봤지만.) 1997년 가을, 그때도 일본 영화는 아직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이었다. 학교 축제 때 영화 동아리가 강당을 빌려 이 작품을 상영했는데, 관람요금으로 1,000원을 받았던 것 같다. 싼값에 낯선 나라 작품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친구 네 명이 함께 강당을 향했다.
그리고 반해버렸다.
<러브레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책도 읽었지요!^^
영화가 참 깨끗했다.
흰 눈 가득한 산에서 시작해서 눈 오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배우가 설산에 대고 ‘오겡끼데스까’를 하도 외쳐서 그런지 작품 색깔도 그랬다. 대립구도 가운데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거나, 누군가 죽으며 애절하게 끝나는 여타의 영화들과는 달랐다. 모든 인물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감성적인 작품이었다.
비극으로 출발한 영화가 이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니... 사실 남자 이츠키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데스레터: 히로코의 복수극’이란 잔혹동화가 전개됐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은 그였기에 살아있는 두 명의 여인이 찬찬히 기억을 정리하며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얘졌던 머릿속에 맑은 추억을 되살려줬으니, 그것으로 딱 좋다.
다시 봐도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명대사다.
직설적이면서도 이중적이고, 웃기는 동시에 진지하다. 어떤 비유적 표현보다 멋진, 중학생 소년 최고 레벨의 사랑고백이다. 그 시절 그녀에겐 장난으로만 보였던 게 문제다. 둘의 만남이 계속됐다면 분명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책 같은 고교 스토리가 나왔을텐데... 마음이 이어지기엔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시간도 부족했다. 너무 어렸던 데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갑작스레 그가 전학을 떠났다. 깨뜨린 꽃병과 함께 그에 대한 마음도 치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잊힌 그는, 안타깝게도 수많은 도서 대출카드 속에서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되고 말았다.
사춘기 시절 내 풋사랑도 그랬을지 모른다. 많은 날들을 애타하다 제대로 고백 한 번 못한 채 지나갔고, 다 쓴 연습장 버리듯 그 속에 채워진 그녀의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았던가? 히로코든 누구든 좋으니 영화 속 편지 같은 게 나에게 도착한다면 추억의 여인 몇은 소환 가능할텐데...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아쉽다. 아, 그 시절 나는 이렇게 무미건조했더란 말인가?
그 시절 남자 후지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책 대출카드 뒷면의 스케치는 에필로그에 가깝다. 아직 의혹이 가시지 않은 관객에게 친절하게 보여주는 답안인 동시에, 굳이 그렇게까진 안 했어도 되는 사족이랄까? 열병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미 잊었던 모든 기억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카야마 미호를 한 번 더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녀가 곧 <러브레터>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흰 눈 그리고 나카야마 미호’ 외에 더 말하면 괜히 입만 아프다.
물론 사운드트랙이나 영상, 트라우마에 대한 해석 등 신경 쓰이는 부분은 많지만... 아마 그건 개봉 후 20여년 새 이 영화를 열심히 봤을 누군가가 분석해 뒀을 테니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걸 알고 아내가 LP 음반도 사줬습니다. 겨울마다 엄청 듣습니다~
사실 1997년 함께 강당을 찾은 친구 넷 중 한 명이 지금의 아내다. 즉 처음 경험한 일본 영화인 동시에 아내와 함께 관람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몰랐다. 사랑이 될 줄. 시간 속에 여러 우연과 사연이 겹쳤고, 13년이 지나 우린 결혼했다. 그리고 또 10여 년이 흘렀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거기서 이 영화를 함께 본 건 운명이고 필연이었다.
운명은 조종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히로코가 쓴 편지는 운명처럼 제대로 주인(?)을 찾아갔다. 죽은 후지이 이츠키가 최적의 때를 택해 두 여인에게 선물한 게 아닐까?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결정적인 순간에 터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