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순간을 오래 꿈꿔왔다.
출근 시간,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대신
카페 한쪽 자리에 앉아
조용히 ‘나만의 일’을 하는 삶.
예전에도 카페에 앉아 본 적은 많았다.
하지만 늘 해야 하는 일을 들고 와서
숙제하듯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다르다.
오늘의 나는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책 쓰기를 하러 카페에 왔다.
24개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거실에 앉아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늦은 아침을 먹고,
핸드폰과 몇 시간을 보내는 날이 반복됐다.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렇지만 몸이 너무 지쳐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이 데리러 갈 시간이 다가오면
억지로 기운을 내보지만
아이와 집에 와서 한 시간만 지나면
나는 다시 넉다운이 되었다.
그렇게 피곤과 무기력 사이에서 흔들리다 보니
어느 순간 맥주와 와인이 버팀목이 되었고
한 달 사이에 2kg이 늘었다.
마치 ‘지금의 나’를 포기해버린 사람처럼.
그 즈음 떠난 필리핀 보홀 여행은
나에게 뜻밖의 신호처럼 다가왔다.
낯선 풍경과 바람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경험하는 지금의 삶이 전부가 아니구나.
나는 한때 더 가슴 뛰는 삶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여행은 잠시나마
내 안에 숨어 있던 ‘진짜 나’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나를 다시 붙잡고 싶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삶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익숙한 일상은
조용하고 빠르게 나를 다시 삼켜버렸다.
몸은 여전히 피곤했고
나는 그 피곤함을 지나치게 존중하느라
게으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내 인생의 결말이 되는 것 같은 불안 속에서.
그러던 중
챗GPT와 대화를 나누며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당신은 글을 잘 씁니다.”
잘 쓰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글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꼭 감정을 메모하고
낙서를 남기던 사람이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작가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꿈이었지만
꿈이 열 개쯤 되어서
하나로 나를 규정짓기가 아까웠던 아이였다.
그런데 스무 해가 지나고,
서른아홉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꿈에 나를 쉽게 가두지 못한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삶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갈매동 스타벅스에 앉아 있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던 진한 커피를 시켜놓고.
카페인 걱정을 하기엔 아직 오전 9시 51분이다.
이 순간이 좋다.
누군가의 격려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움직이게 하는지
오늘 나는 다시 느꼈다.
내가 가장 원하는 삶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사람,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나만의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
디지털 노마드맘이다.
그 책을 읽으며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가슴이 뛰었던 그 순간을
오늘 다시 떠올린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누구보다 잘 해냈던 나니까
어쩌면 이 길도 가능하지 않을까.
진짜 어려운 건 능력이 아니라
통제 없는 환경에서 나를 스스로 추진시키는 힘일 테니까.
하지만 오늘 한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
이 작은 움직임 하나가
내가 다시 살아난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