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 VS 둘째

by Dream

외동에 대하여

오늘은 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나는 24개월 남자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다.
처음부터 한 명만 키울 생각이었다. 한 아이에게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중심에 두고 부족하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나는 여동생, 남동생이 있는 집에서 맏이로 자랐다.
뭐든 나눠야 했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항상 ‘동생들’이 기준이 되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힘들었다는 기억은 없다. 다만 자연스럽게 참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외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부모의 관심과 자원이 온전히 한 아이에게 가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남편은 외동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은 줄여두기로 한다.

요즘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서 잘 놀다가도 꼭 엄마를 찾는다.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 어린이집에 가면 또래와 교류할 수 있겠지만,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늘 함께 상호작용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누군가가 있으면 싸움도 늘어난다.
심심할 틈은 없겠지만,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가정 안에서 그런 관계의 연습을 한다면, 사회에 나갔을 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형제가 둘이나 있지만 사회생활을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포용력은 조금 있는 것 같다.
‘맏이는 원래 조금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변호해보기도 한다.

사실 외동으로 키우겠다는 이유는 아이보다 나에게 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범위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육아를 적극적으로 함께해준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편도 아들 하나를 키우는 셈이니, 나는 이미 두 명을 육아하고 있는 기분이다.
여기에 한 명이 더 늘어나면 아이는 셋이 된다.

지금 아이가 한 명이기에 이렇게 스타벅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시간이 생긴다.
아이 둘이면, 아마 이런 시간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낳았는데, 그 둘이 꼭 친구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미 나이 차이도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유치원쯤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둘이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초등학생이 되고, 그 이후의 시간까지.
둘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른 둘, 아이 둘.
구조만 놓고 보면 균형이 맞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아무래도 어른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가정이 된다. 한 명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 한 명이 늘어났을 때 내 정신과 부부 관계가 온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온다.

아이 한 명인 지금도, 남편과 다투다 보면 쉽게 이혼이라는 말을 꺼낸다.
물론 금방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오지만, 그만큼 우리의 관계가 단단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면서 분명히 좋은 점은 있다.
있다.
아니, 있다.

가족에 한 사람이 더해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다.

게다가 나는 곧 마흔이 된다.
임신이 가능한지도 확실하지 않다. 노산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내 몸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평온한 날에는 가끔 그런 생각이 스친다.
둘째가 온다면 어떨까.

평온한 날이 많아지면,
그 생각도 조금은 더 자라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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