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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Jun 02. 2022

너 옵세잖아

대학생 때는 서로 바빠서 친구와 학교가 다르면 자주 얼굴을 보기 힘들다. 직장인이 되니 더욱 시간 내기 어려워서 일 년에 한 번 보는 거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땐 여름에 반팔 입고 만나면 겨울에 코트 입을 때까지 못 만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학교 다니며 생긴 별의별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친구가 불쑥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소리를 했다. 당황했지만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놈이 괴롭히냐 죽여버리겠다” 하고 농담을 던졌다. 뒤 이어 약을 먹으니 조금 차도가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친구도 갑자기 병명을 고백하고 나서는 이어 나갈 말이 없어 보였다. 아침에 등교할 때 그냥 차에 치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더 캐묻기도 미안해서 침묵하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는 것이 어색하고 위로나 조언도 별 도움 안 될 것 같아서 내 이야기를 막 던졌다.

나도 편두통이 심해 신경과에서 약을 타다 먹는데 아무리 약을 먹고 이 약 저 약으로 바꾸어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으니 의사가 되려 우울증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어떤 기준으로 우울증인 것으로 보이냐 되물었더니 "너 옵세잖아"라고 했다. 그 말에 친구가 테이블을 치며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맞아 너 약간 옵세 기질 있어 그런데 그게 왜 우울증처럼 보였을까?”라고 친구가 되물었다.

“나도 몰라 의사 말로는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참고 누르지만 사실 안 괜찮은 것 아니냐고 그래서 마음이 아픈 건데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억누르고 있으니 몸이 아프다고 알아달라면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친구는 “그것도 일리가 있네...”라고 했다. "그런데 내 두통은 없던 우울증도 생기겠어! 너무 아파! 그래서 의사에게 편두통이 없던 우울증도 만들어 내겠다고 했어 나는 아파서 우울감을 느끼는 정도일 것이라고 대답하고 나왔는데 그 뒤로 계속 의사의 말이 맴돌아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은 것’이라는 말." 내 말에 친구는 “야 손잡고 같이 병원 가줄까? 내가 가는 병원 진료 정말 잘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 뒤로 나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우울증인가 아니면 아파서 그냥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인가? 죽고 싶다는 친구의 마음이 서서히 죽어가는 나의 마음과 같은 것인가?

심장 상태가 조금씩 조금씩 나빠져서 나는 증상을 호소했다. "흉통이 있어요" 내 말에 심장내과 선생님은 이렇게 답한다. "괜찮아 이 정도는 아직 수술 안 해도 돼 괜찮다고 생각을 하라고"

사투리가 약간 섞인 억양으로 괜찮다고 생각을 하라는 답을 들으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병원에 다녀왔다고 하면 병원에서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결과는 어떤지 물어본다. 그럼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나는 괜찮다고 괜찮은 것이라고 되뇌면서 현재 상황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일한다. 일에 몰두하거나 바쁘면 잊겠지 잊고 살면 결과가 나오겠지 어차피 이렇게 저렇게 아프면 손에 쥐는 무엇이라도 있는 것이 속이 덜 상하겠지 하고 일을 하다 보면 문득 일 중독자 같은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될 텐데 차에 치여 죽고 싶다는 친구의 말처럼 나는 일에 치여 죽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신경과 의사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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