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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Nov 13. 2022

어두울수록 빛이 나는

하얀 종이 위에 밝은 색 크레파스로 색을 칠한 후 검은색 크레파스를 그 위에 덧칠한다. 밝은 색을 칠한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애써 그린 예쁜 색들 위에 무자비하게 검은색으로 칠하고 있으면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그림을 망치는 것인지 모를 행위를 하는 듯하다. 그렇게 빈틈없이 새까맣게 덧칠하고 나면 밝은 색을 그릴 때 신이 났던 마음이 사라지고 까맣게 물든 손가락과 짧아진 검은색 크레파스만 남는다.


그런데 이렇게 빈틈없이 손에 힘을 주어 있는 힘껏 검게 칠해야 그다음 과정이 빛을   있다. 먼저 주변에 있는 날카로운 물건들을 끌어 모은다. 이 정도면 그림을 찢을  같이 예리한 물건들일수록 좋다. 송곳이나 칼날 같은 것들 말이다. 검게 칠한 그림 위에 내가 생각한 예쁜 그림을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로 긁어내면  위에 어두움과 대비되는 완벽한 밝음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밑바탕에 화려한 색을 칠해놓고 가장 어두운 색으로 꽁꽁 숨겨놓았다가 이제 검게 칠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날카로운 것으로 그림을 찢을  힘주어 상처를 내는 순간, 탄성이 나온다. "~ 이런 색이 숨겨져 있었다니!"


지금  시간은 스크래치 기법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검은색 크레파스를 칠하고 있는 것일까? 기껏 꿈꿔온 밝은 미래가 무색하게 힘주어 망치려는  아주 새까만 색으로 여태 그려온 미래를 덮고 있다.

색이 너무 어두워서 크레파스 조각마저 다른 색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검은색으로 덧칠하고  후에 나는  어떤 예리한 도구를 가져다가 내가 꿈꿔 그려놓은 밝은 색깔을 찾아낼  있을까?


때로는 잔뜩 힘을 주어 어둡게 덧칠을 하다 보면 밑바탕에 그려놓은 밝은 색은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다시 잘 찾아낼 수 있을지 막막해진다. 어쩌면 밑바탕도 어둡게 그려놓아서 아무리 예리한 물체를 가져다가 긁어내 봐도 탄성이 나오지 않고 탄식만 나오면 어쩌나 싶은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고요하고 차분한 한밤중과 같은 어둠을 한없이 바라보며 내 모습까지도 검은 그림자같이 되어버릴 때까지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숨죽여 묵묵히 집중하며 기다린다. 이 어두움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물체로 다시 검은 그림을 걷어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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