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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Feb 02. 2022

2. 애플 워치는 잠시 꺼두어요.

호주 Gippsland 여행기- Day1 Meeniyan

휴가 가기 일주일전부터 온 사무실 사람에게 광고를 하고 다녔다. 나 휴가 간다. 필요한 거 있으면 이번주 내로 알려줘라고 말하고 휴가 동안에 연락하지마라는 오라를 풍기고 다녔다. 휴가 갈 때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경력이 쌓인 덕인가? 처음으로 휴가 떠나면서 걱정 없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


짐을 싸면서 애플 워치를 가져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분명 운동하려고 샀는데 어느 순간에서부터 운동보다는 업무연락에 훨씬 많이 사용을 하고 있었다. 전화에 문자에 메신저에. 분명히 편하기는 하는데 언제가부터 족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Chill & Relax 이니까. 애플 워치는 얌전히 두고 가로 했다.


이번 여행을 유튜브에 올리고 싶어 아는 동생에게 고프로도 빌리고, 야외활동을 위해 접이식 아이스박스도 챙기고, 기분전환을 위해 새 원피스도 사고 준비는 끝났는데 왜 이렇게 짐 싸기가 귀찮지? 여행은 좋지만 짐 싸기와 짐 풀기는 항상 귀찮다. 떠나는 날 아침 천천히 일어나 집 앞에서 렌터카 키를 가져오고 짐을 정리해서 드디어 출발했다.


운전은 오래간만이라 가슴도 조금 두근두근 떨렸다. 다행히 친구 동네가 예전에 살던 곳이라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친구 짐까지 차에 싣고, 첫 번째 목적지인 Meeniyan으로 출발했다.


하우스 메이트 B

B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는데 나이도 동갑이고 먹는 것도 좋아해 처음부터 쿵작이 잘 맞았다. 마침 집을 구할 때라서 같이 살까 고민하다가, 괜히 같이 살다가 친구사이도 망가질까 봐 두려워 그냥 잘 맞는 친구로 지냈다. 그렇게 1년반이 지났을까 내가 집을 구할 때 마침 B도 같이 구한다길래 우리 같이 살아 보자 하며 하우스메이트가 되었다. 그렇게 2년을 함께 살았다.  헝클어진 머리, 잠옷바람에 같이 브런치 하기도 하고, 나는 한국음식 그녀는 대만 음식 (B는 대만 출신이다) 만들어 먹고, 말도 안 되는 나의 댄스를 보면서 이제는 그냥 그러그려니 하며 깔깔거리고,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울기도 한 나의 단짝. 비자 문제로 Meeniyan이라는 Wilsons prom에서 멀지 않은 작은 시골 동네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어 Wilsons prom 여행에 합류하기로 했다. 사실은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서프라이즈로 깜짝 방문을 하려고 했는데, 출발 며칠 전부터 계속 자기 레스토랑에 오라는 재촉 문자에 결국은 출발하기 직전에 실토했다.

친구야. 우리 지금 간다! 이제 그만 물어봐!


한국처럼 고속도로 휴게소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그냥 논스톱으로 운전하기로 했다. 멜버른에서 1시간 반을 달리니 한적한 시골 동네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한 시간을 더 달려서 드디어 도착!


친구가 멜버른에 올 때마다 '도시에 빛이 너무 많아'라고 할 때마다 너 도대체 어디에서 사는 거냐 싶었는데. 도로 하나에 10개 남짓의 조그마한 상점들이 나래비 서있는 게 시내의 전부인 아주 조용한 시골 동네였다.


B가 일하는 레스토랑은 동네에 하나뿐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야외 좌석이 예쁜 곳이었다. B를 찾으려 부엌을 살피는데 B가 바로 보였다. 화장실에 들려서 카메라를 켜고 이름을 불렀다. B!!! 그리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찐하게 안아주었다.

안녀영. My dear. How are you?


B가 만들어준 정말 맛있는 링귀니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기다리니 그녀의 휴식시간이 시작됐다. 여자 셋이서 신나게 수다 떨다가 보통 휴식시간에 뭐해 물어보니 집에 가서 쉰단다. 그러면서 너네 내 집 놀러 갈래 하는 게 아닌가?


너는 시티뷰? 나는 농장 뷰!

시골에 가기 싫다고 하던 B는 사람 일은 모른다는 말 그대로 농부인 남자 친구를 만나 같이 살고 있다. 차를 타고 조금 달리다 보니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보였는데 그곳이 B와 그녀의 남자 친구 M이 사는 곳이었다.  언덕 위의 농장 뷰는 참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이웃은 다른 언덕에 산다고 하니 복닥복닥한 시티 한가운데 살다가 마주한 한가로움이 너무 좋았다. 시티에 올 때마다 라면이며 소스면 온갖 아시아 식품을 큰 캐리어를 꽉꽉 채워가는 그녀한테 너 식료품점 차릴 거냐고 했는데 그녀의 거대한 팬트리를 보면 우리는 감탄했다. 떠난 지 하루도 안돼 왜 벌써 라면이 당기지? 라면을 깜빡 잊고 안 사 온 것은 정말 큰 실수였다. (Lesson1. 신라면은 꼭 사가야한다. 왠만한 호주 마트에서 신라면을 파는데 이 동네는 없었다.)


다디단 짧은 휴식을 마치고 B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우리는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저녁은 B가 추천해준 피시 앤 칩스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동네에서 장을 보는데 다른 실수를 깨달았다. 시골은 물가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장을 봤더라면 15프로는 아낄 수 있었을 텐데. 배가 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지. (Lesson 2. 시골은 물가가 높으니 장은 미리보자)


너무 아름다운 다운 다운 다운_뷰

구글에서 보물찾기처럼 찾아낸 숙소를 향해 달렸다. Wilsons prom 은 빅토리아 주에서 가장 큰 해상국립공원으로 공원내 캠핑장과 캐빈이 매우 한정되어 있어 1월말 같은 성수기는 6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한다. (호주 사람들은 정말 노는데 진심이다) 에어비앤비와 호텔을 열심히 뒤져도 국립공원에서 거리가 멀고 가격도 비싸서 고민하고 있는 찰나 혹시나 하고 구글 맵에서 뒤져보니 나온 숙소였다. 보니까 주인 할아버지가 귀찮아서 그냥 구글에만 올려 놓으신것 같았다. 시골 cottage라 에어콘이 없어 걱정했지만 로케이션이 국립공원 바로 앞에 있어 정말 끝내주게 좋아 그냥 예약했던 숙소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상에나 눈 앞에 한가득 널다란 푸른 초원과 끝자락에는 바다가 약간 보이고, 눈 앞에서 말과 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친구와 한호성을 지르며 그 자연을 만끽했다.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
맥덕인 우리에게 맥주 없이 여행을 시작할 순 없다


그러다가 나중에 알았다. 에어비앤비가 아니다는 의미는 샴푸도, 샤워젤도, 헤어드라이어기도, 커피도, 차도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오직 비누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다바람이 그대로 불어 에어콘은 무슨 여름 밤이여도 쌀쌀해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잤다. (Lesson3. Cottage는 에어비앤비가 아니다.)



구글에서 보물찾기로 찾은 숙소

로케이션: 별 다섯 

시설: 별 세개 

평점: 시설은 아쉬우나 장소의 메리트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다. 멋진 농장뷰와 저녁에 쏟아지는 보이는 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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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일하는 레스토랑

친구 때문에 추천하는게 아니라 파스타와 피자가 정말 맛있었다. 이탈리아 가족들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멜버른 시티에서 Wilsons prom 가는 길목에 있어 가는 길에 점심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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