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라 Aug 27. 2024

오이냉국 하나는 엄마랑 똑같이 만들 수 있어서

[오이냉국]

여름이 오면 우리 집에는 늘 

오이 냄새가 났다. 


엄마가 오이를 무진장 좋아했기 때문에. 엄마가 된 후 알게 된 것, 한 가지. 가족을 위해 요리한다고 하지만 장 볼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손 간다는 거. 이거는 진짜다. 엄마도 똑같았을 거다, 분명. 식탁 위 수시로 오이 반찬이었다. 오이무침과 오이소박이, 그저 토막 썬 오이와 쌈장, 기름에 살짝 볶아낸 것, 그리고 얼음 동동 띄운 오이냉국 등. 전부 다 시도해 봤는데 그중 엄마가 만든 거랑 100%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는 거는 오이냉국, 딱 하나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계절, 가장 자주 해놓는 반찬이기도 하다. 입맛 없을 때 차게 식은 보리밥에다 말아서 후루룩, 말아먹으면 시원하기도 하고, 마음에 싱싱한 힘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나에게 오이, 하면 역시 음식보다는 팩이 더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주말의 느긋한 시간 때나 일찍 퇴근한 저녁, 늘 얇게 썬 오이를 이마와 뺨 등에 올린 후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다소 어정쩡한 자세로 티브이를 시청하고는 했다. 앉으면 오이가 떨어지고, 누우면 드라마를 볼 수 없는, 아무튼 그러한 상황인 것이다. 또한 슬픈 장면이 나와도, 웃긴 장면이 나와도 평소와 다르게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오이야 다시 붙이면 그만인 건데, 오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무표정을 고수하는 엄마가 재밌어 늘 옆에서 지켜보고는 했다. 


언젠가 엄마 옆에 앉아 그릇에 남은 오이를 집어 먹으며 아깝게 얼굴에 왜 붙이냐, 그런 적 있다. 그러자 엄마는 입가에 주름이 지지 않도록 최대한 입을 오므린 채 너는 철면피라서 내 마음 몰라, 라고 답했던 게 생각이 난다. 


철면피, 그럴 때 쓰는 말 아니야, 엄마. 

나는 생각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내 피부가 철면피 같기는 하다. 사춘기 때도 여드름 하나 없었고, 그 흔한 뾰루지도 잘 안 올라오니까. 기미나 주근깨도 제주도 살기 전까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또 한눈에 보기에 피부가 생기 있고 환한 타입은 또 아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금속성 같은 피부라고 해야 할까. 반면에 엄마는 피부가 좋지 않았다. 어릴 때 난 여드름 흉이 남아 있었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바르니 모공도 좀 늘어나 있었다. 엄마는 멋을 부리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는데 화장대 앞 자주 앉아 있던 거를 떠올려보면, 분명 콤플렉스였던 것 같다. 


그러던 엄마가 갑자기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게 되었다. 아니, 파운데이션뿐 아니라 화장 자체를 관두게 된 것이다. 정확하게는 동생이 수녀원에 들어간 후부터였다. 우리 가족은, 심지어 동생까지도 한 번도 종교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동생이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성인이 된 이후로, 그때까지만 해도 이 녀석이 갑자기 수녀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 했다. 그러나 동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떠났다. 입회하던 날, 명동성당에서 상갓집 온 사람처럼 우는 건 나뿐이었고, 후에 그것이 무척 실례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괴팍하게 슬프다가도 이상하리만치 안도가 되기도 하는, 다소 어리둥절한 감정 속에서 동생을 보냈다면은, 엄마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성당을 다니게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태세 전환이 빠른 것인지, 당시에 나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친정에 갔는데 안방의 화장대 위 화장품이 싹 다 치워져 있었다. 대신에 성모상과 그 옆에 새하얀 이불을 덮은 아기 예수상, 묵주며 성경, 주보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은 그 화장대를 보고 난 후에야 알았다. 엄마가 언제부턴가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화장을 안 한 엄마 얼굴이 더 익숙해졌다. 도리어 피부가 좋아진 것도 같다. 주름이 더 깊어 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또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피부에 신경 쓰지 않으니 오이 팩 따위 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슬퍼지고 말았다. 오이팩 하는 엄마는 늘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특히 오이팩을 마친 후 거울을 들여다보던 그 표정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늘 살아내느라 힘겨워 보이던 서른 중반의 엄마 마음속, 오이 풋내처럼 싱싱한 무언가를 슬쩍 엿본 거 같았던 바로 그 순간을. 


몇 해 년 전, 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다. 편지에는 지난번 엄마가 면회를 왔는데 신발 뒤축이 다 달았고, 옷도 허름해 영 마음이 안 좋다는 얘기와 두고 간 통장의 위치와 비밀 번호가 적혀 있었다. 사실 일찍 결혼한 나 대신 오랜 시간, 부모를 챙긴 건 동생이었다. 동생의 빈자리는 나보다 엄마가 훨씬 더 더 컸을 것. 그간에 엄마에게 무심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모처럼 엄마와 백화점을 찾았다. 아이들 옷을 산 후 중년 여성 브랜드가 모여 있는 층으로 향하자, 엄마는 단박에 눈치를 채고는 자기는 옷 안 산다며 선을 그었다. 내가 옷 한 벌 사는 걸로 뭘 그렇게 정색하느냐, 그러자, 엄마는 예수님은 옷 한 벌로 살다 가셨어, 라고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갔다. 나는 기가 막혀서 두세 벌 더 있었는지 엄마가 어떻게 아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 그래서, 그렇게 성당 열심히 다니며 무슨 기도를 하는데? 

그러자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 동생이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엄마, 동생 안 돌아와. 그거는 내가 알아. 

나는 생각하면서 속으로 울었다. 



오이냉국 간단 레시피 

① 오이를 채 썬다. 
② 반찬통에 물 600ml, 소금 1T, 설탕 3T, 식초 6T, 다진 마늘 1t 넣어 섞는다. 
③ ②에다 채 썬 오이와 양파, 홍고추 등을 더 해 넣는다. 

tip

냉장 숙성 후 먹어야 더 맛있다.
이전 20화 우울증이 철분 부족 때문이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