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의 투병일기
아침에 눈을 뜨니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누가 내게 왜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냐고 물으면 그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다는 게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아침햇살을 보며 오늘도 즐겁겠다. 얼른 일어나고 싶다. 너무 행복하다 라는 생각을 나도 해 본 적이 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오늘 아침 몸이 더욱 무거운 것 같다.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평생을 누워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몸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선택을 생각하지 않는 단계가 되었다. 그 다음 단계가 있는지 없는 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순간에선 이게 마지막 단계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초조한 순간들을 버티기 위해 빠르게 틈을 주지 않은 글을 배출하고 있다. 내가 쓴 글에는 짧고 얕은 호흡들이 느껴진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냥 빠르게 휘발되고 무겁게 가라앉을 뿐이다.
정신과 선생님은 죽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라 쉽게 말했다. 그걸 계획하고 실행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어쨌든 누구나 그런 생각쯤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그 말을 곱씹었다. 차마 삼키지 못하는 말이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 다니 분명 그는 내게 안도감을 주고 싶었을 테이다. 하지만 그 말은 그렇다면 왜 죽지 않는 가 라는 생각으로 번졌다.
죽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왜 죽지 않는 가.
나는 왜 죽지 않을 까 내가 죽어야 할, 죽고 싶은 이유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몇 가지를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럼에도 죽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다. 역시 두려움 때문이다. 남겨진 사람이 겪을 두려움, 죽는 행위가 주는 두려움, 아니 그보다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행복을 느껴봤기에 죽지 못하겠다. 살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햇살이 얼마나 따뜻한 지 느껴봤기에,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봤기에 죽지 못하겠다. 나는 죽을 만큼 지나간 그 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죽을 만큼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며칠 간 죽음을 계획하던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억울했다. 억울함과 서러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밀려와 또 한 참을 울었다. 행복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게 분명하다. 내가 지금 죽지 않는 이유는 그 미련 때문이다. 미련이 남아있는 한 나는 죽지 않겠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흔히 사소한 실패와 계기로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새는 너무 한가로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 살이 쪄서 죽고 싶었고, 과외를 하는 일이 지겨워져 죽고 싶었다.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고 싶어서 죽고 싶었고, 저녁에 우리집에 사람들이 놀러 온다고 해서 죽고 싶었다. 그렇게 죽는 생각이 만성이 되어가고 있다. 그저 죽음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졸리니 자고 싶다는 표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버릇이 되어가고 있고 사소한 행동이 죽음과 끈을 묶고 있다. 나는 오늘도 여러 번 죽었다. 아직 저녁도 되지 않았는데 그 동안 벌써 몇 번을 죽었는지 모른다. 죽음을 생각하는 빈도와 실행은 별 상관없을 까? 죽고 싶다 말하면 누군가는 기겁할 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며 나를 책망할지도 모르겠다. 아 나는 이럴 때조차 남의 생각을 의식하는 구나. 어쨌든 내게 죽고 싶다는 생각은 그냥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과 같은 표현이라는 걸 그 정도의 무게감이라는 걸 그 누군가는 눈치 채 줬으면 좋겠다.
불안장애와 만성 조울증을 갖고 투병하고 있습니다.
가끔의 감정과 치료과정을 적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