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회사를 다니며 느꼈다. 내가 쓴 자소서와 다르게 난 타고난 노예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노예였다.
입사하고 6개월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했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그사이에 있다 보니 서서히 내 입도 닫혔다.
친한 선배는 직장생활이란 원래 눈치 봐 가면서 적당히 알아서 하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선배 말 대로 눈치껏 가끔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척했고, 시키는 일은 먼저 나서서 받아오려 했다. 필요한 게 보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가져다 놓았다.
완벽한 노예였다.
이렇게 하면 칭찬받고 이렇게 하면 욕먹는다는 것을 파악했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할수록 예쁨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칭찬에 목말라 일 했던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혐오’스럽지만, 당시 회사에선 나름 이쁨 받는 노예였다.
노예의 첫 번째 원칙은 ‘복종’하는 것이었으나 1년이 조금 지나자 자꾸만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반항심이 들끓었다.
“안돼, 노예는 반항할 수 없어. 반항할 시간에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해야 하는데.”
버티려고 버티려 노력했지만, 그건 내 이성으로 억제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주인에 대한 반항심’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전형적인 노예가 갖는 고민이었다.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오는 내면의 불안함.
하지만 곧 깨달았다. 타인에 의해 규정된 자신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보다 스스로의 욕망이 훨씬 크다는 것도.
회사생활에 딱히 어떤 계기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본래 태어난 내 성격이 노예에 적합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해본 적 없는 것들이었고, 누가 나에게 알려준 적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모든 해보고 싶었다.
노예를 벗어나야 할 이유가 생겼다.
주인은 노예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호기심’을 갖는 것도 싫어한다.
‘질문’하는 노예는 최악이라 여긴다.
시키는 일은 이유를 알 수 없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니 아니, 노예는 이유를 궁금해해서는 안된다.
나도 한때 노예가 되고 싶었지만, 노예 체질이 아니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고 부정할 수없었다.
그렇게 노예는 주인이 되었다.
이림 /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노예의 반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