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누구나 그렇다
관계의 깊이가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되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를 '어른'이나 '상사'로 대해야 했던
서툰 시기에는 상대가 막연히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내가 누군가의 선배가 된 후의 감정이다.
병역 의무를 마친 남자들은 아마 군생활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것이다.
내가 낮은 계급일때 선임들은 당연히 어렵고,
나중에 고참이 되어 후임들을 상대할때도 오히려 벽이 느껴진다.
나의 내민 한마디가 그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들과의 사려깊은 관계는 그냥 포기하곤 한다.
비슷한 경험을 많이 공유했을 어린 또래들임에도 그랬다.
역할이라는 옷이 주는 무게는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압도했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하지만,
서로 듣고 말하고 싶은 것들이 어긋나
새삼 관계가 확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내뱉으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진다.
이 욕망으로 인해 오래전에 함께했던 친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때,
오해와 앙금이 생겨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소통은 자주 겉돌고,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관계는 평행선을 걷곤 한다.
양쪽이 그것을 원치 않는 상황에도 그렇다는것이 정말 아이러니 하다.
종종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본성임을 깨닫곤 한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라면,
차라리 그 흐름을 영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이젠 적어도 내가 잘 살기 위해 임시적으로 내린 답은
남이 듣고싶은말과 내가 하고싶은 말이 비슷해지게,
아니 비슷한 느낌이라도 주는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긍정화법에 가까우려나?
우리는 흔히 상대를 내 입맛에 바꾸기 위해
그의 오답을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은 오답을 지적받을 때보다,
자신의 정답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움직인다.
당신이 상대방이 듣고싶은말은 무엇일까 ?
라고 생각하는 것이 관성적 습관이라면
꽤나 어른스럽고 관계에 충실한 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내 본심은 "좀 부지런하게 글을 써 봐" 라면
넌 한번 집중하면 몰입도가 좋아서 주말 아침에 쓰면 또 다른 글이 나올 것 같은데?
라고 들으면 내가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
이를 내 주변 관계에 적용해서
현명한 일상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똑같은 말을 다른 포장지에 담을 뿐인데도
긍정적이고 여유있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
관계의 향기와 서로의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며 천천히, 꾸준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