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냈어? 근데 나는 어떻게 지냈더라
드라마나 영화 후반부, 가끔 초반에도 등장하는
<N 년 후, 몇 달 뒤..> 장면들을 아시나요?
요즘은 그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 그 장면들.
그 장면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종종 듭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계속 흘려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까먹는 게 생깁니다
이게 아는 사람이랑 얘기하고 들으면 생각이 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아예 까먹은 것 같진 않은데 ...
어디선가 되살아 날 것 같은데..
살다보면 진짜 많이 잊는것 같습니다.
몇몇 세월덩어리들은 일상이 정말 비슷비슷하고
요즘은 어떻게 8월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져요.
지나간 시간은 다 빠르게 느껴진다지만,
요즈음엔 그게 점점 더 심해집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봐요.
내가 서있는 이 위치를 태그 해서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리는 것도,
기록하고 싶은 순간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것도.
수많은 편리한 기록 수단이 넘쳐나는데,
왜 점점 더 까먹는 게 늘어나는 것 같은지
모르겠는 요즘입니다.
뜬금없지만 생각난 건데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이 말할 수 없는 사정으로 암흑기를 보내거나
갑자기 개인사정으로 잠수를 타거나
이야기 흐름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스킵하는 부분이 나오지 않나요?
이런 장면은
< 5년 후 > , <2년 후 > ,
또는 갑자기 늙은 주인공 뒷모습 클로즈업 /
어디선가 들리는 어린이 목소리 + 흐뭇하게 웃으며
새로운 살림을 차린 여자주인공 클로즈업 등등
결말에 따라 표현방식도 가지각색입니다.
시지프스의 돌덩이가 화강암인지 석회암인지
대강 몇 kg인지 사실 남들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게 몇 KG 던 간에
지고 올라가는 사람은 힘들겠거니 생각되고.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이 지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정해진 줄거리니까 .
그 돌덩이를 지고 올라가다
가끔 돌덩이를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턱을 발견하고
즐겁고 감미로운 안식의 시간이 잠깐 있을 수도 있고,
언덕에서 누군가를 만나 잠깐 위로받았을 수도 있지만
시지프스의 인생은
'평생 돌을 지고 언덕을 오르다.'
라고 한 줄로 쓰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사소해 보이는 것들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깨닫습니다.
그리고 내가 한 경험들은
누군가와의 공감대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열쇠가 될 기회를 얻지 않을까.)
몇 년 후 . . 의 그 몇 년을 그저
*특이사항 X* 라고 결론짓는 게 쌓이다 보면
~and they all lived hapily ever after.
めでたしめでたし。메데타시 메데타시
잘됐군 잘됐어.
OOO는 태어나서 자라고 행복하게 살았다 / 타락해서 죽었다
/ 역경이 있었지만 적당히 잘 이겨내서 그곳에서 살다 묻혔다.
라는 한 줄 순간들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아예 무가치하다는 건 아닙니다.
일부로 흘려버린 시간들도 당시의 내가 고른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시간에 이름과 설명을 달아주는 건
남들이 보낸 잠깐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끝나지 않을 듯 힘들었던 시절에 대해
나 자신도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이 까먹은 시간들에 대해선
조금 미안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그때의 날 위해서라도)
어떻게 지냈어?
.. 근데 난 어떻게 지낸 거지?
잘 지내되, 무엇을 원해서 어떤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내왔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남기려고 합니다.
가볍게 남기되 거짓은 없게끔.
나중에 오랜만에 열어본 내 글 속의 비친 마음이
반갑기는 하더라도 너무 낯설지는 않게끔 솔직히 !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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