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로 시동조차 걸지 못한 '신한반도체제'
올해가 시작되던 날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목표”라며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 올해, 한반도 평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전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경제구조를 혁신하면서도 체감할 수 있는 실질 성과 또한 높이겠다는 포부였고, 북미 비핵화 협상의 일괄타결과 이에 따른 종전선언, 평화협정 준비 등으로 평화 프로세스에서도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었다.
2월 28일 ‘하노이 노딜’로 평화 프로세스는 사실상 정지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이 이렇게까지 서로의 패를 솔직히 까 보인 적은 없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 다음날인 삼일절 예정대로 ‘신한반도체제 추진’을 선포했다. 북미가 외교적이고 의전적 언사를 넘어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 만큼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만 분명하다면 차이를 좁혀낼 수 있으리라 본 것이었다.
그러나 66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베트남에 갔다가 다시 그만큼의 시간을 ‘빈 손’으로 돌아온 김정은 위원장의 내상은 생각보다 컸다. 문 대통령, 한국 정부와의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영변 폐기+사찰’이라는 카드를 던지면 ‘일부 제재 완화+스냅백’ 정도의 합의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미국에 통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하노이를 지켜보던 청와대 또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론이었다. 28일 당일 김의겸 대변인은 오후 2시에 춘추관에 와서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곧 결과를 보자’고 했는데, 한 시간도 안 돼 결렬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불신하게 되었다.
Big Deal과 Small Deal이 절충을 찾지 못하자 청와대는 Good Enough Deal이라는 개념을 내며 다시 중재의 길을 찾으려 했다. 전혀 취재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북미 양측을 향해 ‘제재 완화가 어려우면 종전선언은 어떻겠나’, ‘제재 완화 5개가 어려우면 3개 정도는 어떻겠나’, ‘일단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정도부터 합의하고 다시 논의하면 어떻겠나’ 같은 제안을 물밑에서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 위로 올라온 성과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공들인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 참석까지 포기하며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트럼프의 입에서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문 대통령의 4차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김 위원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의 비무장지대 회동이 전격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번개 제안’을 김 위원장이 받아들인 것이다. 영상으로 본 이날의 회동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조연’을 자처하며 북미 정상의 직접 대화를 이끈 문 대통령의 진정성 또한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북미 정상이 50여분 간 나눈 대화내용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3주 안에 실무팀을 구성해 협상에 나설 거라는 내용이 사실상 전부였다. 북한은 미국 실무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을 경질하며 일부 호응했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실패한 김혁철 대신 김명길이라는 인물을 내세웠다. 그런 과정을 거쳐 북미 실무팀이 다시 만난 건 ‘2-3주 안’이 아닌 ‘2-3달’도 넘긴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였다.
허무할 정도로 스톡홀름의 북미 실무협상은 금방 결렬됐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을 복수라도 하듯 선제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추정컨대 북한이 이때 요구한 ‘계산법’은 하노이에서 제시했던 안보다 더 강경한 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노이에서 미국이 우리의 최고 존엄에게 그런 망신을 줬으니, 미국이 제대로 대화라는 걸 다시 해보겠다는 진정성이 있으면 이 정도 제안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라는 논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받아들일 리 없다. 이후 고조된 긴장은 알려진 대로다.
사실 북미 비핵화 협상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완전히 상반되는 두 주장의 격돌이다. <핵 때문에 제재했으니 핵이 없어져야 제재를 푼다>라는 주장과 <대조선 적대 때문에 핵을 가졌으니 대조선 적대가 없어져야 핵을 없앤다> 주장의 대립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이 굴복하지 않는 이상 북미 협상의 결론이라는 건 ‘동시·병행적 이행’ 이외에는 답이 없다. 결국 하노이가 중요했다. 첫 단추를 잘 꿰었어야 했다. 청와대 해석대로 처음으로 제대로 패를 깐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긴 한데, 문제는 그 패를 깐 주체가 ‘정상’이었다는 거였다.
구조적으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이 갈등의 국면에서 북미-남북관계를 진전시킬 공간을 찾아내지 못했다.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전되지 않고 있고 국제적 대북제재가 그대로인데, 한국이 그 노선에서 이탈해 ‘제재 완화’를 전제로 하는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합의사항을 이행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제재 완화’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의 각종 남북협력 제안에 대해서는 북한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해했다. 임정 수립 100년을 ‘신한반도체제’ 출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문 대통령의 큰 구상은 사실상 어그러졌다.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중재가 어느 정도 과감했는가라는 것이다. 무슨 얘기나면 북한을 향해서는 “나를 믿고 과감하게 비핵화 먼저 나서봐라.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미국이 대조선 적대를 해소하지 않으면 내가 한미동맹을 깨겠다” 하고, 미국을 향해서는 “나를 믿고 과감하게 제재를 풀어보자.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후 미국이 어떤 대북전략을 세우든 전적으로 동의·협력하겠다” 같은 수준까지 접근했는가 하는 말이다. 이러한 과감성이 없이 북미 간의 ‘본질적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이 정도를 하지 않았다면 ‘중재자’를 자임할 수도, 해서도 안될 일이다. 반대로 이 정도를 했는데도 북미가 움직이지 않은 거라면 ‘중재자’라는 역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1년을 짚어본다는 게 평화 문제에 대해서만 쓰게 됐다. 2020년 시작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이 밝힐 ‘새로운 길’에 대해 이목이 집중돼 있다. 과문해서인지 딱히 반전의 포인트는 보이지 않는다. 대선가도에 나설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북미대화에 나설지도 잘 모르겠고, 나서서 어떤 합의를 한다 한들 얼마나 구속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재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진전 또한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조급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김 위원장은, 한미를 상대로는 올해 하반기 또는 그보다 약간 강한 수준에서 긴장 국면을 유지하면서 중러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2021년 이후를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