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을 포함해 31박 32일이라는 역대급 휴가의 마지막 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2년 반 넘는 청 출입기자로서의 노독(路毒)을 풀기에는 충분했다고 봐야겠다. 물론 혼자서 오롯이 쉬기만 한 게 아니라 두 초딩들을 돌보고 가사를 전담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역시 낮은 노동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는 덜했던 것 같다. 걱정이 많지만 다시 아이들을 믿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막연히 꿈꿨던 혼자만의 여행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두 차례 좋은 여행도 다녀왔다. 제주도 그리고 여수&순천. 아름다운 표선 앞바다와 광활한 순천만 습지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다. 다음에 또 국내 여행의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남해의 섬들을 다녀보고 싶다. 청산도라든가...
표선 앞바다 카페 '달보드레'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니라 화폭 같다
내일부터 돌아가야 할 현장은 이제 청와대 춘추관이 아니라 국회 소통관이다. 가면 또 몸이 알아서 적응하겠지만 겪어보지 못한 현실에 대한 막막함이 크다. 춘추관 생활을 하며 쌓아 올렸던 노하우, 업무지식들은 모두 인수인계했다. 악전고투를 거치며 내 안에 체화한 것들은 이제 내일부터는 상당 부분 필요가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 시작해야 한다.
기자는 고된 노동의 보람을 '의미'에서 찾는다. '내 기사'가 조금이라도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세상이 좋아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의미가 없으면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정치부 기자는 '의미'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짧은 경험이지만 정치부 기사의 휘발성은 유독 강해 보인다. 힘들게 쓰는 기사인 건 마찬가진데 너무 쉽게 증발해 허공으로 흩어져버리는 느낌이다. 기록으로 남는다고 하지만 유사한 기사를 수백 개의 매체가 생산하니 내 기록이 갖는 희소성도 특별할 게 없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도하게 되는 기사의 대부분이 기자가 '찾아낸' 기사가 아니라 외부 상황으로부터 '주어진' 기사라는 점도 이러한 느낌을 두텁게 한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자들이 주목하지 못하는 공간을 찾아 들여다보고 발굴하려는 노력은 정치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다.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감시와 비판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부 기자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의미만큼이나 재미를 느껴야 정치부 기자로서의 고됨을 견뎌낼 수 있다. 편과 편의 대결과 경쟁, 갈등과 타협, 편 내에서의 헤게모니 경쟁 등을 지켜보고 파고드는 과정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의미만 추구한다면 정치부 기자로서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아울러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겠지만경쟁사보다 충실한 보도를 했다는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 그 만족감이 고된 하루를 버티고 다음날을 맞이할 힘을 준다. 그렇지 못한 날은 잠을 이루기 어렵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조간을 확인하며 자괴감을 느낄 때도 수두룩할 것이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힘이 없다. 그러나,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시 하나하나씩 배워나가야 한다.
이렇게 쓰다 보니 잠깐 잊고 있었던 지난 2년 7개월 간의 스트레스가 재현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2년 7개월은 결국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