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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미 Oct 04. 2023

나무들의 밤  

그림책을 읽고 위로 받았던 어느 밤

몇 년 전 북스테이로 여행을 갔을 때 '나무들의 밤' 이라는 그림책을 봤다. 인도의 예술가 상을 수상했단 바주샴 작가의 작품이었다. 판형도 크고 종이질도 다른 그림책과 달랐다. 질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깜깜한 밤 문 닫은 책방안에서 이 책을 나에게 읽어주었다. 책을 읽는 내 목소리가 낯설지만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 소리에 편안함을 느꼈다. 오래된 나무를 볼 때 들었던 존경심, 경외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느껴졌다. 언제나 읽을 수 있도록 집에 놓고 싶었지만 그림책 가격을 보고 구입을 할 수 없었다. 혹시 이 책을 잊게 될까봐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다. 참 오랫동안 그 속에 있었다. 



"목동은 송아지와 함께 커다랗게 암소를 부르며 숲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어요. 어느새 어둠이 닥치고 하늘 그득히 시커먼 구름까지 몰려오자 목동은 어쩔 줄 몰랐어요. 송아지를 껴안은 채 눈물만 흘렸답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숲 속을 헤매였던 목동의 마음을 생각해봤다. 애가 타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을 거다. 송아지를 껴안은 채 눈물만 흘리는 목동이 지금의 내 모습 같아 안쓰러웠다. 울고있는 목동에게 가서 괜찮다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많이 참았다고 나에게는 애정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눈물만 흘렀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우리 사이를 바꿀 수 있었을 까?'

'내가 왜?'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들이 내 일상 속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왔다. 내 인생에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던가? 불안한 나의 20대를 어떻게 견뎌냈을 까? 10년 정도 지나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이 가벼워 질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만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만일 숲 속에서 길을 잃게 되면 셈바르 나무를 찾으세요. 어둠 속에서 황금처럼 빛나는 나무, 어려움에 빠진 생명을 보호해 주는 나무 말이예요."


이혼 접수를 하러 법원에 갔다. 미성년자의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소요 된다고 안내 받았다. 이 시간 동안 아이는 누가 키울지, 양육비는 얼마로 할 지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결정 해야 된다고 한다. 

상담선생님은 왜 이혼을 하느냐고, 아이는 누가 키울 거냐고 설문지에 있는 질문들을 하신다. 아이를 내가 키우고 싶다는 말에 상담사 선생님은 남편을 밖으로 내보내신다.


"아이를 키우는 건 현실이예요. 현재 월급으로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잘 알아요.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많이 힘들거예요.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달도 있을 거예요. 정말 이혼하고 싶어요?"


내 얘기를 듣고 남편만 따로 불러서 남편의 얘기를 듣고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해주신다.


"3개월 후에 올 필요 없어요. 접수 해도 안 오면 그만이예요. 다시 오는 날은 잊고 정 힘들면 6개월 후에, 일 년 후에 오면 돼요. 다시 와서 또 얘기하고 그렇게 살아요." 라고 하시면 남편 옆에 있던 이혼 관련 서류들을 다 갖고 가신다. 초등학생들을 화해 시키는 선생님처럼 악수를 시키고 등을 다독여 주신다.


상담선생님은 그림책 속 셈바르 나무였을까?

어려움에 빠진 우리 상황이 바로 달라지진 않겠지만 우리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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