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덩어리 딸의 思母曲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시의 내용보다도 더 강조한 말이 있다.
-얘들아. 아무리 엄마가 미울때가 있어도, 친구들이
랑 얘기할 때 '엄마충'이란 말은 쓰지마..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소위 '패드립'이라는 것들이 있다.
패드립은 상대방의 부모를 비하하는 말이란다.
대표적인 예가 '엄마충' '마마몬'..
서슴없이 그런말을 하는걸 보니 기형도 시인의 애처롭고 슬프기까지 한 저 시가 와 닿을리 없겠지.. 싶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나가던 우리네 엄마들은 한 쪽 어깨에 아이들의 가방을 걸치고 학원 앞을 데려다주는 엄마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엄마를 기다리며 찬밥처럼 방에 담겨 있던 아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이 학원 저 학원을 옮겨다니며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게 됐다.
'공부충'이 되어가는 요즘 아이들의 작은 분노가
'엄마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얼마전, 매우 당황스런 일이 있었다.
독립 후 1년.. 엄마집에 들리는 횟수는 어느새 한 달에 두어번 꼴이 되었다. 무뚝뚝한 엄마는 2주에 한 번씩 '김치 안 떨어졌나?' 라고 근황을 물으신다.
가끔 답을 못 할 때가 있는데 무지 서운 해 하신다.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면서 '엄마'니까 무심해 질 때가 있다. 바쁘다는 흔한 핑계로 엄마와 밀당을 하는 못된 딸.
그런 엄마가 어느날 '나 취직 좀 시켜줘'란 톡을 보냈다. 난 바로 전화를 걸어 요즘 심심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단호했다. 일해서 돈 벌어야겠다며
이대로 늙어가는게 싫다고 하신다. 얼마 안되지만
매달 조금씩 보내고 있는 내 용돈도 받기 싫다신다.
액수가 넘 적은가 싶어 10만원 더 드리겠다고 했더니 "너한테 돈 받는게.. 너무 자존심 상해"..
사실 그 말이 난 참 서운했다.
고작 그거 받는게 자존심 상하다는건지..
베베꼬인 내 머릿속은 결국 온갖 짜증이 담긴 멘트만 내뱉게 했다.
-누가 엄마 써준대? 써 줄 사람이 있을거 같아?
-할머닌 집에서 애나 보세요..란 소리 듣고 싶어?
-지하철도 공짜로 타는 나인데 누가 써 줘 누가!!!!
-그냥 집에 있어! 일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병원비가
더 나와!
엄마의 깊은 숨소리만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나니 계속 그 자존심 얘기만 후크송처럼 맴돌았다. 괜히 내가 오버한게 아닌 가..
그래도 짜증섞인 말투는 좀 아니었는데.. 잠깐 후회라는 것도 했다.
그러나 10분 뒤, 엄만 다시 톡을 보냈다.
'그래도 알아봐. 써준다는데만 있으면 잘 할께'
엄마는 진심 같았다.
단지 시간을 때운다거나 소일거리로 용돈 벌 생각이라기 보다 '일'을 하고 싶은거였다.
그 날, 하루 종일 온갖 포털 사이트는 다 뒤진 것 같다. 그래도 엄마의 나이는 가장 큰 걸림돌.
가능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엄마가 잔뜩 실망 할 표정이 떠올랐다.
새로고침 버튼을 클릭하며 행여나 하나라도 있을까
나 역시 간절해지고 있었다.
집 근처 학교에서 급식 배식 알바를 모집한다는
구인글을 다시 클릭했다. 50세 여성까지만 가능하대서 읽자마자 뒤로 넘겼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담당자 연락처를 적기 위해서였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쓰듯 길고 긴 문자를 남겼다.
당연히 답문은 없다. 읽었는 지 읽고 씹힌건 지 알
수도 없다. 엄마한테 그 문자를 캡쳐 해서 보냈다.
아마, 엄마 나이를 보자마자 그냥 제꼈을 거라고,
연락 기다리지도 말자고 달랬다.
문자가 안갔을 수도 있다며 한 번 더 보내보라는 엄마말에 난 다시 냉혈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간절하면 엄마가 전화해 보던가!!!
30분 뒤였나.
엄마의 전화목소리는 무척 흥분 되어 있었다.
담당자와 10분이나 통화를 했단다.
일단 나와서 하루 일 해보고 결정 하자고 했다는데
이미 엄마는 취업이 된걸로 굳게 믿고 있었다.
실망시키지 않겠단다..
그리고 취직 시켜줘서 고맙단다.
그냥 난 눈물이 났다.
왠지 울컥하고, 미안했다.
엄마의 일자리를 알선 해 준 딸이라니..
진작에 돈 벌어서 일찌감치 용돈도 드리고
갖고싶어하는 것도 사주는 효녀가 아니어서
아니, 그런 딸이 못 되어서..
그날 따라 내 자신이 너무 속상했다.
엄마는 무사히 신고식을 치루셨다.
다행히도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열심히 출근하고
계시다. 딱 열흘 후에 짤릴거라며 농담삼아 던진
말에 엄마는 "너나 잘해" 라는 답톡을 날리셨다.
다시 시크한 우리 엄마로 돌아온 것 이다.
동창들에게 이제 오전시간은 약속 못나간다고
나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단다.
가장 부러워 하는 친구는 손주 둘 돌보는 친구였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셨다.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결국 내 맘도,
내 걱정도 한 층 가라앉았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괜히 다치실까 걱정도 됐다가도,
그냥 '엄마'는 참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엄마를 안닮았지만.
엄마를 보며 '엄마'를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