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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래청 Aug 10. 2020

별이 되어 떠난 동생

처음 목격한 죽음

동생의 죽음은 갑자기 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보다.

나는 그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수군거렸다. 전날 밤 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그때 동생의 나이가 겨우 3살... 아직 엄마의 젖내를 맡으며 말도 하지 못할 때였다.


우리 형제는 모두 칠 형제였다. 내 위로 형이 있었는데 동생이 보고 싶었는지 얼마전 이별의 말도 없이 별이 된 동생을 보러 갔다.


중현이는 일곱째 막내였다, 딸을 원했던 어머니가 또 마지막이라고 막내를 가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온 것을 보니 고추를 달고 나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형제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어 동네 아이들이 우리 형제에게 씨비를 걸지 못했다. 당시는 모두 아들딸들을 많이 놓은 시절이지만 아들만 일곱이니 감히 누가 우리 형제에게 덤비겠는가?


이렇게 막강하던 형제들이었는데 막내가 시름시름 아팠다. 당시는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이고 아프면 동네 약국에서 약 사 먹는 정도로 아픈 몸을 치료했던 시절이었다.

아쉬운 이별!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시간을 보낸 아쉬운 그 순간이 원망스러웠다.

동생이 어디가 아팠는지 자꾸만 울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동내 아는 병원에 다녀오셨다. 병원에 다녀와서도 동생은 위가 아픈지 자꾸만 젖을 토하고 칭얼거렸다. 의사가 병명은 그냥 소화불량이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간호장교 출신이다. 또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셨기에 6명의 아들을 잘 키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형제들이 아프면 배에 손을 얻고 약 30분을 마시지 해주시면 신기하게 치료가 되었고 음식을 잘못 먹어 얹히기라도 하면 등을 두드리고 손가락을 잘 따주셨다. 그럼 시원하게 치료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동생의 배앓이도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병원을 다시 다녀오시더니 말이 없으셨다.

밤 10시경 어머니가 동생 중현이의 다리를 주무리며 "아가야 아가야"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형제들을 모두 다락방에 올라가도록 하시고는 동생을 안으시고 계속 울먹이시며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이 궁금해 문을 조금 열고 아래로 내대 보았다. 어머니가 갑자기 중현이를 방바닥에 내려놓으시더니 뒤돌아섰다. 나는 동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지켜보았다.


조금 후 어머니가 다시 동생을 안으시더니 다리를 주무르고 "아가야, 잘 가라" 하시는 게 아닌가.

동생의 다리가 점점 빨개지더니 얼굴까지 빨개졌다. 동생은 몇 번의 신음소리를 내더니 눈을 뜨고 하늘나라로 갔다. 어머니가 동생을 안고 "아가야, 미안하구나" 하시며 동생을 이불에 싸서 방 한쪽에 두었다.


동네 사람들이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도 모여서 동생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당시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귀가하실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했다.


처음 죽음을 목격하다

나는 동생의 마지막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밤 0시가 조금 넘어 아버지가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셨다. 동네 사람들이 더 크게 뭐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오시다니 상황을 파악하시고 동생을 안고 "중현아, 아빠가 잘못했다. 이놈아 왜 죽은 거야?" 하시면서 두 눈을 감지 않은 동생의 눈을 만지며 "아빠가 잘못했다, 그래 눈 감고 잘 가라" 몇 번을 동생의 뜬 눈을 아래로 쓰러 내리니 동생이 그제야 눈을 감았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거봐, 아빠 얼굴을 못 보고 죽으니 아빠 올 때까지 눈을 감지 못하더니 세상에 아빠 얼굴을 보니 신기하게 눈을 감았네, 쯧쯧 불쌍해라"

아버지의 통곡하시는 소리와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눈을 감은 동생은 죽어서도 아버지를 기다렸다. 하늘나라 가는 데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말이다.

 왜 별이 되어 떠났을까?

학교에 가지 않고 동생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했다.

나는 다음날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니 우리 형제들이 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마 늦은 10월이었나 보다. 어머니가 동생의 관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동네 목공소에 주문을 했는데 찾아오라는 것이다. 밤이었다. 외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가서 목공소에 도착했다. 나는 3살짜리가 들어갈 관을 가지고 집으로 뛰었다. 정말 무서웠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밤길을 뛰고 뛰면서 뒤를 얼마나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집에 도착하니 온몸에 땀으로 범벅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3살짜리 아이인데 그냥 야산에 가서 관도 없이 돌무덤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동생을 부산 당감동 묘지에 연락을 해서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다.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친구 두 사람과 함께 용달차 같은 트럭에 싣고 집을 떠났다. 나는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왜 동생이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는지 궁금했다.

여름밤이며 방에서 자지 않고 시원한 마당에 나와 평상위에 누워 밤하늘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곤 하였다.

"형 저기 봐 또 별똥별이 떨어졌어"

나는 동생이 별이 되어 하늘로 간 뒤 밤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별똥별이 떨어지면 동생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동생들과 함께 평상에 누어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을 바라보면서,

"막내가 우리를 보고 싶어서 또 우는 가봐"

"어어~형, 저기 봐 또 떨어졌어"

우리 6 형제는 이렇게 속삭이다가 잠들곤 했다.

왜 별이 되어 떠났을까? 지금 생각하니 안쓰럽다.

내가 둘째이고 막내는 나와 띠가 같았다. 지금 세상에 있다면 형제 중 나를 제일 많이 닮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보고 싶었던 동생의 모습을 언제나 내 얼굴 속에서 찾으셨다.

"그래, 너를 제일 많이 닮은 동생이었어" 어머니가 가끔 막내 동생이 생각나시나 보다. 어머니께서도 이제 세상과 이별하여 하늘의 별이 되실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갑자기 3살 때 일찍 하늘의 별이 되어 내 곁을 떠난 동생이 생각나서 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몇 자 적는다.

"형, 나 많이 아파~"라고 말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어린것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 곧 동생을 만나러 떠날 준비를 해야 하지.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말없이 떠난 그 녀석이 보고 싶어 진다.

"내 동생 중현아, 형이 네가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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