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 그리고 옥상

인천 청년 사회 서비스 사업단

by 림스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일단 신체 건강팀 선생님들은 술을 좋아하기도 했고 잘 마셨다. 보통 다들 퇴근 시간에 맞춰서 한 잔씩 했다. 그 한 잔이 또 다른 한 잔을 부르게 되고 결국 다들 얼큰하게 취하게 되었다. 정신팀에서도 술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역시 얼큰하게 되었다. 역시 술은 한 잔이 적당하고 두 잔은 많다. 하지만 세 잔부터는 부족하다.


첫 프로그램이 끝이 났다. 다들 걱정했던 것보다 잘했다. 문제는 충분한 참여자 수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속 보완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다른 기관과 협력해 참여자 수를 늘린다거나, 각 선생님들의 지인을 참여시키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일단 첫 프로그램을 잘 마무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날도 꾸리꾸리 한 것이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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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씩 들어갔다. 아직은 어색한 우리였다. 역시 어색할 땐 술 게임이 국룰이다. 게임 중 야자 게임도 있었다. 막내였을 때는 주인공을 차지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었긴 먹었나 보다. 나보다 2살 어린 진구와 원인재가 주도했다. 특히 원인재는 이 게임을 잘 이해했다. 나에게,


“야, 이 새꺄 살 좀 빼. 배가 그게 뭐냐.”


후... 한 번 참았다. 옆에서 진구는


“얌마, 술 안 따르고 뭐하냐. 술 좀 따라봐.”


두 번 참았다. 웃었다. 입과 눈이 다른 근육을 쓴다는 것을 체득했다. 입은 웃지만, 눈은 안 웃는 그러한 것. 게임은 게임이었으니깐 웃었다. 그리고 항상 원인재는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술 취한 척을 하고 집으로 도망갔다. 가면서 끝까지.


“살 빼자. 쉐끼. 형 간다.”라는 말을 남기곤 집으로 갔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기억할 것이다.


이 소란스러운 놀이들은 너무 재밌었고, 절대 헛되지 않았다. 거리에 어둠이 깔리고, 얼큰해지자 사회적 자아는 퇴장하고 개인적인 자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네모네모 게임을 진행했다.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진구는 중간중간에 옥상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다. 우리가 쓰는 사무실 복도 끝에 옥상문이 있었다. 나는 바람을 맞고 싶으면 같이 나가곤 했다. 가끔 다른 선생님의 전자담배를 피우곤 했다. 옥상에서 바람은 스산했지만 담배 연기는 부드러웠다. 어둑한 옥상에서 반대편에 있는 푸르스름한 아파트들을 바라봤다. 괜히 감성에 젖어 담배를 피우는 허세 가득한 모습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간지럽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KakaoTalk_20210804_141528099_11.jpg 청운대 옥상에서 바라본 아파트


다시 돌아와 남은 이야기와 술을 나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자신의 인생 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원인재가 이 이야기를 꺼냈다.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는 노래들을 이야기했다. 그 노래를 선택한 배경들까지도. 재밌으면서도 꽤 진지한 이야기들을 개인적인 자아로 둔갑하니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들은 착하고, 재밌었다.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술을 마시면 재밌었다. 여기가 이렇게까지 재밌을 줄 몰랐다. 대충 일하다 중간에 퇴사하고 캐나다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큰하게 취한 후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비자가 승인되었다는 메일.


기다렸던 메일이었다. 좋은지, 싫은지 애매한 감정들이 뒤따라왔다. 검정도 하양도 아닌 회색 같은 기분이 내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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