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하며 한 시간 점심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여기저기 잘도 먹고 다녔다. 물론 교직원 식당이 있었고 음식도 지금 영국 와서 생각해 보면 한 끼에 10파운드(16,000원)는 족히 나갈 아주 근사한 점심이 3000원 정도에 제공되었었다. 일이 바빠 정신이 없을 때는 교직원 식당이나 학생식당을 이용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늘 점심엔 뭐 먹을까?'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누군가는 전화기를 들고 미리 예약할 준비를 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 보면 참 그립다. 그만큼 그때 그곳엔 선택권이 넘치고도 넘쳤다.
영국은 대부분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물론 우리 학교에도 식당이 있다. 점심시간 전에 미리 주문해 놓으면 식당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점심시간 전에 교직원 휴게실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아니면 학생들은 줄을 서지만 교직원들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해 받을 수 있다.
난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샌드위치도 몇 번 싸가봤지만 이상하게 식후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는 게 아주 불편하다. 그래서 요즘엔 찹쌀에 병아리콩이나 집에 있는 잡곡류를 섞어 압력밥솥에 넣고 소금 간해서 밥을 지어놓고 소등분 해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아침에 한 개씩 꺼내 도시락으로 가져간다. 점심시간에 전자레인지에 1분만 데우면 금방 한 밥 같기도 하고 찹쌀떡 같기도 한 게 참 맛있다. 다 먹은 뒤 입가심으로 사과하나 먹으면 훌륭한 점심이 된다. 이렇게 싸간 지 벌써 한 달이 넘는다. 엄마와 통화하다 이렇게 도시락을 한 달 넘게 싸갔다고 하니 그걸 지겨워서 어떻게 매일 같은 것을 먹냐고 하신다.
"엄마, 여긴 한국처럼 다른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주변에 널려 있지 않아. 그래서 생각을 그렇게 하니 지겹지 않고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남편도 여기 와서 5년 가까이 매일 같은 도시락을 싸간다. 피넛버터잼 샌드위치. 우리가 이렇게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도 되는 게 난 세시 반이면 끝난다. 남편도 집에 오면 네시가 조금 넘는다. 배가 고프면 저녁 먹기 전에 군것질을 조금 하면 된다. 그리고 지겨울 때 즈음이면 일주일, 2주일, 6주 방학이 돌아온다.
주변에 다양한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이렇게 삶은 단순해지고 고민이 많이 덜어지기 때문에 만족감도 생각보다 꽤 높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