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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의 Expat Nov 16. 2021

실론티와 국제개발협력

오랜동안 개도국 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서 활동했다.

발런티어로, 프로젝트 매니져로, 전문가로...

40대 후반, 늦깍이 엄마가 된 시점, 스리랑카에서 몇 년 지내게 되었다.

개발협력의 특성상 현장업무가 많은데, 아이 때문에 자유롭게 출장을 떠나기 힘들었다.

뭘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장기로 체류하니, 스리랑카 주요산업, 실론티 역사에 관한 글을 쓰자!


글을 보고 스리랑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실론티(주로 홍차가 많음) 교역을 하면 좋겠다.

한국에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관광이 주 산업중 하나인 스리랑카에 여행도 더 많이 오면 좋겠다. 나름스리랑카에서 내 몫의 개발협력이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는

개도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자신의 인생을 바쳐 성인으로 추앙받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

그러니 이 분야에서 활동하면,

고생하는구나! 힘들겠다! 스리랑카? 아프리카, 어디라구? 이런 말들을 꽤나 많이 듣는다.


그런데 난 정작 별로 힘들지 않았다.

물론 개도국 환경에 적응하려면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분들만큼 고생하지는 않았다.

성인이라는 이름을 주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분들은 희생하는 삶이 기쁨이었을 것이고, 그 기쁨이 힘이었을 것이다.


보통사람인 나는 고생만 하고, 즐겁지 않았다면, 아마도 벌써 이 삶에서 이탈했을 것이다!

사실 무게감, 희생, 존경받는 삶,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나는

동안 개발협력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어떻게 정의할지 고민했다.

"내가 인류를 구할 순 없다. 난 가난한 사람, 한 명도 구할 수 없다. 심지어 나 하나도 버겁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내가 가진 달란트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한다."

이렇게 결론내리자, 그저 평범한 나도 오래도록 이 길에 머물 수 있었다.


현장과 사무실에서 많은 자원봉사자, 인턴, 후배들을 만나며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

자원봉사자는 스스로 희생해야 하며,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불평해선 안된다.

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돈을 추구하지 말고, 남에게 봉사하는 삶,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는 이 길이 아닌 거 같다며, 다른 길로들 많이 떠나갔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항상 말한다.


너무 힘들게 하지 마!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마! 몰아대지 마!

여행도 가고, 좋은 식당도 가고, 예쁜 옷도 사.

즐겨도 돼, 즐기면서 해!

힘들면 오래 못 버텨!


개도국과 선진국으로 나눠지는 나라들을 여행하며 알게된 것이 있다.

선진국을 여행하면 주변 환경은 전반적으로 좋지만, 그 안의 개인인 나는 상대적으로 가난했다.

개도국을 여행하면 주변 환경은 낙후되었지만, 그 안의 개인인 나는 항상 풍족했다.


20대, 2년간 우즈베키스탄 자원봉사자로서의 삶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 나라의 임금 자체가 너무 적다보니, 나는 꽤나 풍족한 사람이었다.

물론 더 힘든 상황에서 애쓰시는 분들도 많지만,

프로젝트 매니져로서, 전문가로서의 삶은 개도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인 경우가 많다.

런 면에서 개발협력 전문가나, UN 전문가들이 개발협력 귀족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건 거의 영화 '친구' 장동건의 대사 "(그럼) 니가 가라. 하와이!" 가 된다.

이 삶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환경에서는 하루도 못 버티겠다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아무튼 나는 개도국에서의 삶이 즐거웠고 풍족했다. 대단하게 내 인생을 희생한 것도 아니었다. 재밌는 일을 했고, 생활에 필요한 돈도 벌었고, 그 일이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면 감사할 뿐이었다.


'실론티 역사 여행' 이 글 역시, 개발협력을 하는 사람으로서 즐거이 맡은 내 몫의 책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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