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을 출판하기까지
나는 어떻게 브런치북 출판에 참여하게 되었나?
브런치스토리는 매년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는 2022년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40권 중의 한 권을 출판하는 파트너 출판사 발행인 자격으로 선정에 참여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던, 신문사들의 연례행사인 ‘신춘문예’를 연상하게 한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작가 지망생들, 혹은 저자 입문자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브런치북은 이제 하나의 출판 모델로 자리매김 되었는데, 출판 성과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신인은 넓게 발굴되어야 하고 스스로 등용되어야 하고 출판의 기회를 공정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브런치스토리는 이 역할을 매년 묵묵하고 일관성 있게 해내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 과정을 기술해보겠다. 나의 생업은 출판인이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브런치스토리의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충분히 나의 관심을 끌고도 남았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특이한 공고를 띄웠다. ‘브런치북 특별상’ 출판을 원하는 출판사의 지원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운 점이 여기에 있다. 카카오에서 직접 파트너 출판사를 모집하지 않고 출판진흥원이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대리해 대상 출판사를 선별한다는 점.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날카롭다. 출판진흥원은 제출해야 하는 신청서에 출판사의 최근 2년간의 출판 활동과 역량, 강점을 기술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특별상 응모작들을 심사하고 선정하기 위한 심사기준과 심사 전담 인원, 출간 일정 따위를 상세히 알고 싶어 했다. 이 사안의 검증은 브런치스토리보다 출판진흥원이 수월하고 엄정하게 잘 해낼 수 있는 전문영역이었을 터다. 나는 충실히 응했다. 2022년 8월 말에 신청서류를 접수하고 심사를 거쳐 9월 초, 파트너 출판사로 선정 통보를 받았다. 연이어 주관사인 카카오 브런치팀이 킥오프미팅 일정을 숨 가쁘게 공지해 왔다. 본격적인 파트너십의 시작이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작년에 10번 째를 맞았다. 브런치북은 무엇인가. 브런치스토리 작가 스스로가 책을 상상하고 기획해, 10편에서 최대 30편의 글을 써서, 브런치스토리에서 제공하는 ‘브런치북’ 형식으로 발행한 것을 말한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란 이 브런치북 중에서 일정 편 수를 선정해 출판사와 연계해 상업출판을 하는 파트너십을 말한다. 2021년 9회에는 대상 10개 작품과 와디즈특별상 3개 작품을 선정해 총 13권의 책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출판됐다.
2022년 10회에는 출판 프로젝트 규모가 훨씬 커졌다. 대상 10편에 특별상을 40편으로 늘렸다. 따라서 대상 10편을 출판하는 출판사 10개 사와 특별상 40편을 출판하는 40개 출판사, 총 50개 출판사가 파트너로 참여하게 되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는 1~9회에 걸쳐 누적 3만2천 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는데, 재작년 9회에는 5,900여 작품이, 작년 10회에는 무려 8,100여 작품이 응모되었다. 출판가에 화제를 몰고 온 빅셀러 <90년생이 온다>, <젊은 ADHD의 슬픔>, <안 느끼한 산문집> 등이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 브런치 작가 중 출간 이력이 있는 작가들의 총 도서 수는 수천 권에 이른다. 브런치는 명실공히 출판을 꿈꾸는 신인 작가들에게 가장 좋은 ‘저자’ 등용 루트가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브런치북 응모작을 심사하고 선정했나?
나의 기준은 간명했다. 독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쓰기 수준과 주제의 신선함을 우선해 원고를 고르려 했다. 글쓰기 수준을 검증하려면 원고 하나하나를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다른 방법은 기존에 출간한 이력이 있는지를 살피거나, 구독자 수의 많고 적음이 검증 지표가 될 것이었다. ‘출간 작가’라는 의미는 한 차례 출판사의 검증이 있었다는 뜻일 테고, 또 다른 지표인 ‘구독자 수’는 글쓰기의 기본이 안 돼 있거나 내용이 재미가 없거나 유용하지 않다면 다수의 구독자를 보유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고심 끝에 구독자 수를 기준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구독자 수는 글쓰기 수준의 보장과 더불어 책의 상품성과도 연결되는 지표인 까닭이었다. 장르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살펴볼까도 궁리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장르로 접근하면 관심사를 명확히 하고 원고 탐색에 편리한 점이 있겠으나 수작을 놓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하나는 출판사의 특성이나 출판 방향과도 관련이 있는데, 다행히 우리 출판사는 출판 범위가 넓고 전방위적 교양을 다루고 있어 장르적 제한성을 엄격하게 가져갈 이유가 없었다.
어떤 주제의 글들이 브런치북으로 엮였나?
나는 요즘의 예비저자들이 어떤 글을 많이 쓰나 살펴보았다. 다행이라고 여긴 것은 여타 SNS에서 보이는 ‘자기계발’적 글쓰기가 브런치북에서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얻은 소재들을 정리해낸 글이 가장 많았고, 자신의 직업이나 하는 일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 혹은 통찰을 나누는 일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글쓰기가 대단하고 요란한 무엇이 아니라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의 과정으로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떤 글들을 후보작으로 골랐나?
나는 흥미로운 글들을 찾아 프롤로그와 첫 번째 글 한두 편씩을 읽었다. 이 말은 앞으로 브런치북에 응모하려는 신인들에게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글에서도 첫인상이 중요하니 흥미로운 글을 맨 앞쪽에 배치하면 좋겠다는 뜻이다. 편집자들이 책을 엮는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한 책의 모든 챕터가 흥미롭고 모든 글이 좋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가장 잘 된 글을 앞 부분에 배치하려는 심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나는 자신의 직업에서 얻은 통찰과 경험을 나누는 원고에 눈이 갔고, 인문적 교양을 정리한 콘텐츠에도 관심이 갔다. 내가 뽑은 후보작들은 구독자 수가 1천 명 대에서 1만 명 대의 편차를 보였다. 4천 명대가 그중 가장 많았다. 나는 후보작들을 다시 살피면서 상중하로 분류하고 점수를 매겼다. 점수가 높은 순으로 열 개의 작품을 배열했고, 편집장이 고른 리스트와 비교했다. 나는 <늘지 않는 디자인>을 1순위로 뽑았는데 다행히 편집장의 리스트에도 이 원고가 상위에 올라 있었다. 편집장과 나는 별 이견 없이 <늘지 않는 디자인>을 최종 선정작으로 골라 브런치팀에 결과를 알렸다. 그것이 작년 11월 말의 일이었다. 이후 브런치팀에서 그 선정된 원고의 기출간 여부, 저작권 이슈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12월 21일, 브런치스토리에 선정작들이 공식 발표되었다.
<늘지 않는 디자인>을 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
브런치북팀에서 최종 심사평을 제출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작품 소개에 붙여야 하니 두세 문장으로 아주 짧게 써서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써서 보냈다.
“인식은 깊고, 글은 간결하다. 적확하게 말하는 시원함이 있다. 디자인의 언어로 사람과 세계를 읽어낸다.”
내가 <늘지 않는 디자인>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낀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제목이 내 관심을 끌었다. 디자인은 직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나날이 중요해지는 세상 트렌드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게도 교양의 범주에 드는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디자인 이야기는 늘 흥미롭고 새롭다. 특히 나처럼 책을 만들고 디자이너와 일을 해야 하는 직업군은 디자인 품질과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은 늘 지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용이 좋고 제목이 좋아도 디자인이 꽝이면 그 상품은 외면당한다. 그런 디자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원고이니 내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늘지 않는’ 디자인이라니. 정곡을 찌르는 제목이 아닌가? 얼마나 많은 디자이너가, 얼마나 많은 디자인 의뢰자들이 이 말을 읊조리는가?
“왜 디자인이 늘지 않는 걸까?”
두 번째는 저자 숀의 글쓰기 능력이었다. 책을 낸 적이 없는 저자인데도 글이 무척 깨끗하고 단정했다. 생각보다 단정하게 쓰기가 어렵다. 디자인을 잘한다는 것은 심플함에 대한 철학, 즉 단순성의 미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일 터다. 숀은 글쓰기에서도 이 디자인의 단순성을 구현하고, 핵심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충분히 실력 있는 디자이너란 증거였다. 숀이 쓴 글에도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을 인용하는 부분이 나온다.
“우리는 왜 단순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까요? 물리적인 제품을 다룰 때 그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것에 질서를 부여하면, 제품이 사용자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단순함은 하나의 시각적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품에 대한 모든 것과 그것의 제조 방식을 이해하는 겁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저자 숀의 글쓰기 태도가 무척 안심 됐다. 단지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내는 원고였다면 나는 흥미를 크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잘 요약하고 잘 정리해내는 작가는 많으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이나 소신을 정중하게 밝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숀의 글에는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깔려 있었고, 지나친 감정이입을 배제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에 가닿으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 진심이 숀의 글에 설득력과 신뢰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늘지 않는 디자인>을 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작가 숀과 책 편집 작업을 하면서
그의 책을 만들면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편집회의 시간에 편집장에게 물었다.
“숀이랑 작업하는 거 어때요?”
편집장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좋은 저자예요. 소통도 잘 되고 약속도 잘 지켜요. 멋진 사람이에요.”
작년 12월에 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나서 모자란 원고량을 채우기 위해 브런치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추가 원고를 저자에게 요청했다. 저자는 순조롭게 추가 원고를 보내주었고 편집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다만 한 가지 고민되는 게 있었다. 디자이너가 쓴 책인데 표지디자인이 구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같이 작업을 하는 몇몇 디자이너를 떠올려봐도 깔끔하고 쌈박한 디자인이 쉽게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때 편집장이 제안했다.
“숀에게 직접 해보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북디자이너가 아닌데 괜찮을까요?”
“그래서 새롭지 않을까요? 틀에 박힌 디자인보다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어요?”
우리의 제안에 숀도 흔쾌히 해보겠다고 했다.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얼마 후 숀이 보내온 여러 컷의 표지 시안을 보는데 내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고 상징적이고, 요샛말로 ‘신박함’그 자체였다.
보통 책 제목 회의에는 몇 시간이 소요된다. 결정까지 며칠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 시간은 채 10분이 넘지 않았다. 여러 제목안이 나왔으나, 숀이 브런치북에 올린 원제목, ‘늘지 않는 디자인’ 그대로 가기로 정리했다. 원제목보다 더 좋은 제목이 있을 수가 없다는데 모두가 동의했다.
<늘지 않는 디자인>은 어떤 책인가?
2023년 5월 30일,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늘지 않는 디자인>이 책으로 완성돼 서점에 뿌려졌다. 나는 이 책이 디자인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하는 주니어 디자이너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책이고, ‘디자인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현장에서 오래도록 갈고 닦고 부딪히며 실력을 쌓은 디자이너의 따뜻한 조언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의 장르는 예술 분야이지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철학을 담은 인문교양서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탐구하고 공부하는 자가 쓴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브런치스토리에 감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유용한 글을 세상에 내보내 준 저자 숀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브런치북과 함께해서 기뻤고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