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사이비 교주
나는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어떤가? 착한 사람이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글을 읽기 바란다. 선승교의 신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승교라는 종교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거다. 왜냐면 내가 방금 만든 종교이기 때문이다. 뜻은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뜻이다. 교리도 있다. '정의는 승리한다.'.
인생을 살면서 느낀 슬픈 점 중 하나는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점이다.
- '친일파와 독립유공자의 후손들', 기사를 보고 애국심이 사라졌던 때가 있다. 친일파의 후손은 강남땅부자로 산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컨테이너에서 어렵게 산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뒤, 발발한 전쟁과 혼란스러웠던 나라의 정세로 인한 결과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니다.
- 내가 목격한 상황들. 대체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무시한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겐 쩔쩔맨다. 또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이 분노조절잘해로 변하는 상황이 있다. 이는 분노 대상이 만만한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시를 보며 반박을 하거나 엉터리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본인 주변에 있는 착하지만 무시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다. 이쯤에서 '착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착하다'의 의미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나와있다. 이 설명은 상당히 애매하다.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에서는 '착하다'의 의미를 '항상 상대방을 위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손해까지 감수하려는 마음씨.'로 이해하길 바란다. 상대를 위해 본인의 손해까지 감수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행위는 당연히 옳지 않다.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상대를 위한다면 손해까지 감수하려는 마음씨 때문이다. 누군가 손해를 보면 누군가는 이익을 본다. 착한 사람은 손해를 감수하기 때문에 이익을 보려는 사람의 타깃이 된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결국 상대적으로 더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착한 사람끼리 모여 살면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 생각이 선승교를 떠올린 계기이다. 누군가는 '그럼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덜 착한 사람이 이익을 보지 않아? 상대적으로 더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세상에 발을 들이려면 조건이 있다. 이기심의 크기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더 큰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는 조건이다. 이기심의 크기와 상대를 위하는 마음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이는 과학이 더 발전하면 각각을 측정해서 수치화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상황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 상황이 너무나 자주 발생하는 현실은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은 멍청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차선책을 택하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언젠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혹은 더 나아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착한 사람을 보호해 주고 우대해 주는 법이나 제도가 생겨 모든 인류가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체벌을 부활시킨다면 모든 사람이 착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