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의 심각한 문제점
내 주변에 사이코패스로 의심되는 친구가 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 같은 발언을 했다. 참고로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제정신이다. 때는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사람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식당에서 뉴스를 통해 이 사고를 접했다. 이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이 죽은 거야'
운명론이란 모든 일이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운명론에 따르면 내가 브런치에 운명론에 대해 글을 쓰게 된 현 상황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던 수순이다. 글을 쓰기 전 확인한 내 주식이 떨어져 있던 상황도, 불의의 사고로 죽을 사람도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다. 운명이라는 불가피한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는 그냥 물 흐르는 데로, 마음 가는 데로 살면 된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운명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릴 적 했던 포켓몬 게임이 떠오른다. 포켓몬 게임은 계속해서 선택지를 고르는 게임이다. 제작자는 플레이어가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고를 몇 가지 선택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선택지에 파생되는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에 따른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었다. 다단계의 피라미드 구조처럼 선택지는 선택지를 낳고 플레이어는 선택을 반복하다가 한 가지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기나긴 여정을 마친 플레이어는 자유로웠던 플레이에 만족한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하던 도달한 결과는 제작자가 제작한 범위 내에 있게 된다. 이는 운명론과 유사하다.
운명론의 장점은 무엇일까? 운명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안정과 위안을 준다. 일종의 자기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일어났던 가장 슬픈 일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건 내 운명이었어.라고 말해보자.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건 자의식이 발동한 상황이다. 우리는 자의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것을 막아준다. 운명은 자의식을 발동하게 해주는 요소이다. 운명론을 믿는 사람들은 현실은 그대로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일시적 달콤함 때문에 운명론을 추구한다.
원래 오늘 내 계획은 2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운명론을 한 번 거슬러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시간이 되지 않은 지금, 글을 마무리했다고 가정해보자. 운명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내 운명을 거스른 것일까? 원래 계획과 다르게 2시간을 채우지 않고 글을 마무리하는 상당히 변칙적인 이 행위는 아쉽게도 이미 내 운명이었다. 허탈함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결국 결과가 정해진 상황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설명한 운명론의 특징은 사실 운명론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어떤 행동을 해도 정해진 결과에 도달한다는 점은 사람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운명론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만히 있어도 결과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행동이 인생에 있어서 패배를 불러온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 준비된 자가 되려면 독하게 살아야 한다. 운명론자에게 묻고 싶다.
운명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없다면?
미친 듯이 노력하고 열심히 살자. 운명이라는 게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을 보라. 당신은 이미 당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경험을 했다. 뭐든 할 수 있다. 만약 미래에 운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본인의 운명이었거니 하면 된다. 현실에 안주시키는 행동은 술집에서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