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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씨 Dec 08. 2022

C레벨과 군것질 거리

과자를 내미는 그들의 마음

일전에 다니던 소비재 회사의 상무님의 책상 서랍엔 신기한 군것질 거리가 가득했다. 수제 사탕과 고급 마카롱, 씻은 과일이 담긴 락앤락. 심지어 그는 진귀한 과일들도 항시 계절마다 주문해서 먹는다고 했다.

그 회사는 뻥 뚫린 파티션 없는 오피스 옆쪽으로 임원 사무실이 있는 구조였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면, 그는 손에 한아름 군것질거리를 담아서 임원방에서 나왔다. 손에 담긴 것은 사탕이나 젤리, 종종 빵과 과자일 때도 있었고 이따금은 직접 씻어 온 스테비아 토마토나 고구마 말랭이 일 때도 있었다. 그는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조용히 간식을 나눠주고 간단한 담소를 나눈 뒤에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첫 사회 경험은 아니었지만, 큰 기업에 다니는 건 처음이었던 지라 그때 나는 유독 C레벨로 불리는 임원을 어렵게 느꼈었다.(“상무”라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 상무. 나의 아저씨에서도 상무 달려고 온갖 중상모략에 시달리던 이선균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의 간식 세례도 가끔은 부담스러웠다. 그가 씻어서 가져온 토마토를 말단 대리인 내가 뺏어먹는 것이 예의가 있는 행동인지도 모르겠어서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한 뒤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하기도 했다.


지금 다니는 콘텐츠 회사의 부서 임원도 비슷했다. 그녀의 자리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데, 가끔 우리 자리로 와서 각종 쿠키와 빵을 주고 가곤 한다.


예전의 나는 사양하던 것들을 이 회사로 이직하여 와서는 덥석덥석 받아서 먹는다. 당장은 먹기 싫더라도 ”감사합니다! 이따 배고플 때 먹으면 딱이겠다. “하고 받아둔다. 내가 임원들을 어렵게 느끼는 것만큼, 그들도 팀원들의 자리로 오는 발걸음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색함을 줄여보고자 손에 한아름 빵과 과자를 담아 오는, 그들의 뻔하지만 다정한 나름의 방법에 화답하고자 한다. 덕분에 배도 든든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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