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먹어 치우듯

by 영씨

우리 집 근처에는 과일가게가 있다.

작은 좌판에 가까운 가게이지만 과일이 달고 맛있어 종종 갔었다.


그 옆에 아주 큰 과일가게가 생겼다. 팔레트로 과일상자를 옮기는 규모 있는 가게다. 여기서는 수박을 사람이 열멍쯤 들어가도 가뿐할 만한 상자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판다. 모든 과일을 그렇게 판다. 사람들은 큰 과일 가게로 모였다. 쌓인 과일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부산히 과일을 골랐다.

작은 가게는 사람이 없었다. 회전율이 낮아서 그런지 전만큼 과일이 싱싱하지 못했다.

큰 과일가게에는 구름처럼 사람이 몰렸다. 쌓아둔 과일이 저녁 즈음이면 바닥이 보였다.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었다. 거의 밤 열한 시, 열두 시가 되어가는 무렵, 시장 사이로 서둘러 집에 걸어갔다. 24시간 순댓국집만 불이 켜져 있다. 어두워져서 긴장한 채 시장길을 걷는데 갑자기 환한 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과일 가게. 주인은 자정까지 과일 가게를 열어두었다. 그 시간에 과일을 사러 올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시간이란 무엇일까.

자신만만한 사람들은 시간이 금이라며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내 시간이 금값이니, 나와 함께하는 시간 그 자체로 억만금을 내라고 한다.


내어놓을 것이 시간뿐인 사람도 있다. 빠르게 좇아오는 회사일을 무한히 해치우는 게 유일한 장점이구나, 하는 감각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내가 가진 건 내 시간. 정확히는 내 시간을 남에게 싸게 주고 나만의 시간은 찾지 않는 것. 서글퍼도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고 돈도 벌고. 그게 나의 값싼 시간의 값이었다.


그러다 문득 돌아봤을 때 시간을 헐값에 팔아넘긴 사람들에게 갑자기 시간이 박하게 굴 때가 있다. 내 시간을 포기한 대신 나중의 안락함과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 시간이 꼭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진다. 갑자기 다가와서는 “네가 시간을 빠르게 내어준 탓에 이제는 남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서럽게.


동도 트지 않은 오늘 새벽일을 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오늘도 그 과일 가게의 작은 좌판 위 전구는 켜져 있다.

시간을 먹어 치우듯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도 계속 배가 부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