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뿜어내지 않으면 밀려오는 감정들에 잠겨버릴 것 같아서
예전에 학교에 김영하 작가님이 오셔서 강연을 해주신 적이 있다. 그 때는 참 책도 안 읽을 때였고, 그냥 그 작가님을 좋아하는 친구의 친구 때문에 같이 간 자리였는데 몇 년이 지나고도 선명히 남아있는 말이 한 마디 있다.
"누구한테든 보여줄 수 있는 글 말고, 누가 보면 큰 일 날 거 같은 글을 쓰세요"
어려서 작가를 꿈 꿨던 것 같기도 한데, 크면서 그 꿈과 점점 멀어졌다. 그런데 또 지금 하는 일은 내 이름으로 글 쓸 일이 많아서 자랑스럽게 "이게 내 글이오"하기 보단 글쓴이 이름을 숨기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열었다가 그 때의 내가 기록해둔 김영하 작가님 한 마디로 글을 쓸, 그리고 그 글을 펴낼 용기를 얻는다.
참 이상하게 감정이 너무 날뛸 때는 일필휘지로 글이 잘 써지고, 하지만 글이라기엔 너무 날 것 그 자체이고, 오늘은 차분하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을 땐 쓸 말이 없다. 그래서 그냥 감정 조각들을 일단 써 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누가 보면 큰 일 날 거 같은, 그리고 내가 많이 창피할 거 같은 글이다. 오늘의 내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생생히 담아놓으면 내일의 내가 좀 더 다듬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그리고 사실은 써야 할 것 같다. 요즘 나는 감정이 너무 솟구쳐서 밖으로 뿜어내지 않으면 밀려오는 감정들에 잠겨버릴 것만 같다. 보통 머리보다는 손이 한 박자 느린 편이니까, 글을 쓰려면 머리가 아닌 손의 속도에 맞춰야한다. 그러다보면 생각이 멋대로 뻗쳐버리는 걸 한 박자 늦추고, 글자로 찬찬히 펼쳐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다면 적어도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