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시작은 있다. 시작은 늘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 불안을 뚫고 앞으로 한걸음 나아갔을 때의 기분이란 무척이나 짜릿한 것이다. 짜릿함은 늘 위험하다. 그 위험은 중독에 대한 위험을 포함한다. ‘시작에 대한 중독’이 그것이다.
‘시작에 대한 중독’은 끝을 생각하지 않음에서 온다. 끝을 생각한다는 것은 달뜬 마음을 짜게 식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애다. 처음 사랑에 빠질 때 끝이 먼저 생각나 버린다면 어떻겠는가. 짜릿하기는커녕 미적지근하지도 못한 시작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끝을 생각하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중독성에 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찢고 나오는 쾌감과 같다. 잘 쌓인 블록을 무너뜨리는 것, 아무런 발자국도 없는 눈밭에 첫 발자국을 찍는 것, 잘 포장된 선물의 포장지를 찢어버리는 쾌감과 같은 것이다.
끝을 생각하지 않는 시작. 바보 카드의 인물 또한 그래 보인다. 그의 표정은 한껏 달떠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그는 오직 ‘시작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있을 뿐이다. 그의 옷은 그런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화려하고 밝다. 밝은 노란색의 배경에는 그의 기분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는 극단적 이게도, 끝뿐만 아니라 그 끝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에게는 ‘오로지 시작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은 ‘바보’다. 생각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으며 그저 시작할 뿐이다.
나는 그가 부럽다. 아니, 부러웠다. 나에게 시작이란 늘 무거운 것이었기에. 시작을 향한 그 한걸음이 참 버겁다 느꼈을 때가 많다. 마음을 가벼이 먹고 싶었고, 주저 없이 시작하는 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내일이 두렵지 않은 듯 오늘에 자신을 투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주저 없이 시작한 듯 보이는 그들에게도 불안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두꺼울수록 그것을 뚫고 나가는 쾌감 또한 커진다는 것을. 한없이 바보스러운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은 어쩌면 생각보다 두꺼웠을지도 모른다. 시작에 앞선 불안이 클수록 시작이 주는 짜릿함 또한 커지는 것이기에.
그는 어쩌면 이미 끝을 맞이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의 표정에서 해방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듯 완성된 틀을 찢고 세상 밖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토록 달뜬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느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뒤로한 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기에 그토록 환희에 가득 찬 게 아닐까.
이는 순수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순수라는 건 무엇인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는 상태가 아닌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순수를 잃어버린다. 보고 듣고 만지며 세상은 우리에게 섞여 들어온다. 그러니 ‘바보’는 다시 태어난 것과 같다. 지난 여정을 뒤로한 채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상태가 ‘바보’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새롭게 떠나고 싶은 마음. 시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다시 출발하고 싶은 마음. 불가능해 보이는 그 상태를 우리는 사실 자주 겪고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여정이다. 눈을 뜬 순간에는 그날 잠이 드는 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루에 대해 생각하며 걱정 혹은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걱정과 기대감은 결국 같은 것으로부터 온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변의 사실로부터.
뻔하고 뻔한 말이지만, 걱정보다는 기대를 품었을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순수함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바보’가 부럽다면, 우리는 걱정을 기대감으로 바꿔야 한다. 그 근원인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작은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시작이 주는 짜릿함에만 온몸을 맡긴다면 아무것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시작에 대한 중독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시작은 결국,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시작과 충동이 주는 짜릿함에만 심취하지 말아야 한다. 바보의 앞에는 절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기에 ‘바보’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나의 발걸음은 어제보다 가볍다. 아무것도 모르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나는 되뇐다. ‘내일의 일은 알 수 없으니,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자.’ 마치 ‘바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오직 앞을 향한 자신의 마음만을 따라가듯 그렇게 시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길의 앞에 절벽이 있을지라도, 나는 오늘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