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재능과 재능을 발현시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재능은 무형의 것이다.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만드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재능을 실체화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마법사 카드는 그 에너지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재능이 많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자랑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칭찬이 아님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재능은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재능이 쓸모가 생기는 것은 그것이 발현되어 무언가를 이뤘을 때뿐이다.
아무것도 실현시키지 않는 내게 재능이라는 말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에 가까웠다. 이 말을 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기만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을 속이며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나는 재능은 그 자체만으로는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은 초심자가 무언가를 잘해 냈을 때다. 해 본 적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과를 보여줄 때 우리는 재능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그게 정말 재능인지, 아니면 운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남모를 노력의 성과인지. 때문에 재능이라는 말은 애초에 실체가 없다. 실체가 있는 것은 실현해 낸 성과다.
재능이라는 말이 거추장스러워지는 순간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찾아온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 타인의 기대치. 나는 내 재능에 대한 기대감에 눌려 결국은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되는 일이 허다했다. 시작이 계속 무산되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자아에 대한 과잉된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감의 하락을 불러일으켰다.
자신감이 다시 차오르는 순간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언가를 실현시키는 순간이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을 믿으려면 자신의 의지를 깨닫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온전히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행동과 결과라야 자신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재능이 많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알아채기 힘들다는 것과 같다. 어릴 적에는 하고 싶은 것과 칭찬받고 싶은 것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칭찬받을 행동을 하고 싶은 것은 아이의 본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분별한 칭찬은 아이를 혼란에 빠뜨린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아이가 결국 틀을 깨지 못한 채로 자라서 성인이 되면 끝없는 무기력에 사로잡힐 수 있다. 본인의 의지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채로 정처 없이 흐르듯 살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작고 단순한 일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타인의 시선 혹은 내면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나락으로 끌고 내려간다.
나의 삶이 그러했다. 아주 작은 일도 내게는 버거웠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내겐 너무 힘겨운 일이었다. 이는 어릴 적의 경험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성향도 분명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내겐 나의 의지를 뻗어내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에 비해 마법사 카드의 인물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마법을 실현시키는 인물로 보인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의지라는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실현시키는 능력. 그것은 그의 표정뿐만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옷과 손, 탁자 위의 물건들로도 알 수 있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얀 옷과 그 위의 붉은 옷은 정신적인 가치를 물질적으로 실현해냄을 의미한다. 또한 하늘을 가리키는 오른손과 땅을 가리키는 왼손도 하늘의 권능을 현실에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탁자 위의 완드, 컵, 소드, 펜타클은 각각 불, 물, 공기, 흙의 4 원소를 형상화한 상징물이다.
정신적인 가치, 하늘의 권능, 4 원소는 무형의 것이다. 물질적, 현실, 도구들은 유형의 것들이다.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만드는 것.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것이다. 마법사에게는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발현시키는 능력이 있다.
다시 재능 이야기로 돌아와서, 마법사는 보통 다재다능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인물로 표현된다. 마법사는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감에 넘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재능을 실현해내는 능력, 그리고 실현하려는 의지와 그의 재능이 만났을 때 마법사에게 자신감이라는 게 생겼을 것이다. 재능과 의지라는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실현해냈을 때 그는 비로소 마법사로서 바로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나’로서 바로 서 있는가. 나는 내 안의 무형의 것들을 유형의 것으로 잘 실현시키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나는 무기력에 사로잡혀있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내게 재능이 없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이상 타인과 스스로의 기대감으로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재능’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나는 무언가를 실체화시킬 에너지가 생겼다. 그 에너지의 이름은 ‘의지’다. 무형의 것을 기필코 유형의 것으로 실체화시키려는 나의 의지. 여기 이 글에 담긴 나의 생각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