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뭘 못하겠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더 갈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든 지는 2주가 넘었다. 그가 더 먼 길로 떠나고서부터 든 생각이다. 그는 아마도 우주로 갔을 것 같다. 우주에서 홀로 많이 외롭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와 나에겐 서로밖에 없었다. 이 지구 상에서 유일한 연결고리인 그를 잃어버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말이 낯설다. 살아가기보단, 어떻게 유영하며 버텨야 하나.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지구를 유영했다. ‘이 별을 만난 건 지난번 별에서 입니다.’ 이소라의 노래처럼 우리는 지난번 별에서 만나 이 지구에 도달했다. 괜히 지구에 태어났다고 떼쓰던 나를 그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를 약하게만 보았으나, 그는 강한 사람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지켜볼 만큼, 그만큼 강한 사람.
나를 지켜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슬라임 같은 사람이니까. 어디로 미끄러질지, 어디가 어떻게 찌그러질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람. 그러나 적어도 나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라는 물질적 틀 안에 가둘 수 없는 존재였다. 마치 바람과 같은 그. 열아홉엔 그에게 울면서 매달렸다. 너는 바람처럼 사라질 것 같아. 날 버려두고 가지 마.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날 버려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의 길을 걸어갔을 뿐이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자우림의 rainbow. 오늘은 어땠니, 얘기해주겠니, 듣고 싶어. 그는 내 이야기를 늘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자주 들려주지 못했다. 우린 멀리서도 같은 꿈을 꾸었지, 곁에 없어도 그리움보다 따뜻한. 우린 정말 멀리서도 같은 꿈을 꿨을까.
그의 음악 리스트는 꼭 심장박동 같다. 비트가 둥둥,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마치 자신의 심장 소리를 느끼고 싶기라도 하듯이. 심장은 멈추었으나 응급실에 누워있는 그의 볼은 여전히 따뜻했다. 입관식에서 그의 볼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뽀뽀를 해 주고 싶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몇 번이나 울컥이는 나의 글. 나의 글의 울컥임은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너에게도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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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한 대 피우고 왔다. 그는 나를 따라 담배가 늘었다. 열아홉의 우리는 좁은 방 안에서 담뱃진으로 벽을 그렸다. 노랗게, 따뜻하게. 요를 깔고 엎어져서 두 대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심심했지만 따뜻했다. 우리의 대화는 심장박동 같았다. 대화가 이어지다가, 침묵이 찾아오다, 또다시 대화가 이어지다가, 침묵이 다시. 우리는 살아있었다.
그와 내가 살아있던 때가 그립다. 그리움이란 애타게 보고 싶은 마음. 입관식에서 온몸이 떨린 이유는 그의 물질적 틀을 다시는 볼 수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수의는 그의 손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 그의 볼에 뽀뽀하고 싶었으나 눈물이 묻으면 안 된다고 해서 하지 못했다.
그는 내 우는 모습을 참 좋아했다. 스스로 사탄이라고 의심할 만큼. 그가 내 이마를 때리면 나는 빽 울었다. 그의 앞에서 우는 게 나도 좋았다. 마지막 날에는 그가 내게 심통을 부렸다. 불러놓고 잔다고. 그래서 나는 왜 나한테만 심통을 부리냐고 눈물을 조금 흘렸다. 그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다행처럼 느껴진다.
다행인 것도, 미어지는 것도 많다. 사실 아직도 내 마음은 붕 떠있다. 그래서 더는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붕 뜬 채로 살아갈 30년의 세월이 느껴진다. 삶이 두려웠고 땅의 감각이 무거웠으나 이제는 그렇지는 않다. 두렵지도, 무겁지도 않으나, 앞으로의 나는 붕 뜬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머릿속엔 온종일 그가 있다.
그는 바람처럼 내 안에 존재한다. 물질의 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너무 빠른 게 아닌가. 나의 걸음걸이는 느리고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는 나의 걸음걸이를 늘 위태로워했다.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하다 했다. 이제 나의 걸음걸이를 누가 불안해하나. 나의 머리를 누가 쓰다듬어 주나. 나를 누가 울릴까. 나를 누가 아이처럼 대해주나.
아마도 내가 죽는 순간에는 그가 내게 손을 뻗어 나를 이 물질의 틀로부터 끄집어내 줄 것이다. 나의 예감은 틀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예감만큼은 맞았으면 좋겠다. 나를 다시 아이처럼 일으켜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뭘 더 어떻게 해야 할까. 더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도 나는 뭔가를 또 하고 또 그만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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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그의 심장은 늘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는 수백 장의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내게 진심을 다해 글을 쓰라고 했다. 진심을 다해 글을 쓰는 것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나의 진심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 나의 진심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를 깊게 사랑한다. 이 우주가 수만 번 다시 태어나도 그를 여전히 사랑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연인이었을 때도, 친구였을 때도. 그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순간들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내가 나의 진심을 믿는 순간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랑은 진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사랑하자’였다.
그는 미움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을 믿었고 진심을 믿었다. 이 지구와는 지독하게도 안 맞는 존재. 사랑과 진심과 순수의 존재. 그와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에는 스스로 친 암막이 그의 순수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암막은 걷혔다. 그 스스로 순수를 세상에 드러냈고 내게 보여줬다.
순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열아홉의 나는 순수를 믿지 않았다. 세상도, 사랑도 믿지 않았다. 그를 처음 좋아하기 시작한 순간, 그와 처음으로 통화를 하던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의 경계선은 흐릿했다. 마치 오래된 필름 같았던 그의 모습. 그러나 점점 그는 선명해졌다.
화요일에는 어느 카페에서 신나게 한쪽 팔을 들고 내게 인사하는 그를 봤다. 선명했다. 내가 그를 봐주지 않으면 그가 시무룩할 것 같아서 그 자리를 한번 봤다. 보이진 않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그가 떠나고 3~4일간은 혼자 있는 시간에 선명히 그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그를 느끼고 있다.
아니, 더 느끼고 싶다. 부족해. 그의 솥뚜껑 같은 손을 잡고 싶다. 더는 못할 것 같다. 예전처럼 그만두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없을 뿐이다. 그리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제 내게 어려운 일은 없다. 내가 상상하던 가장 큰 비극은 실제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 비극을 안고 살아갈 내 앞날이 혼란스럽다.
내가 상상하던 가장 큰 비극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은 내가 이상하다. 나의 예감과 예상은 대부분 빗나간다. 나의 좌우명은 ‘내일의 일은 알 수 없다.’ 그의 좌우명은 ‘나의 모든 활동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 목에는 그의 좌우명과 나의 좌우명이 새겨진 펜던트가 걸려있다.
괜찮은 척하고 싶지 않다. 쓸데없는 희망도 갖고 싶지 않다.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불분명하고 불확실하고 불규칙적이며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다. 그래, 그게 내 진심이다. 그의 말처럼 나는 이제 조금씩 진심을 적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내 심장 박동은 여전히 뛰고 있다. 그러나 나는 더는 못할 것 같다. 적당히 살아있는 것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