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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May 03. 2021

나의 호수

엄마, 그 이상인 사람 鏡

 리나의 늦둥이 막냇동생 연우가 아직 꼬마인 아홉살 때부터 집에서 제일 키가 큰 180cm의 중3이 될 때까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엄마, 경이었다. 보통 이성의 부모는 사랑하고 동성의 부모를 존경하게 된다는데 연우는 예외였다. 남자임에도 연우는 아빠와 좀 더 친했고, 엄마인 경을 반쯤 우러르며 존경해왔다. 한 번은 리나의 남편, 그러니까 연우의 매형이 왜 경을 존경하는지 물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요."


 대답을 하면 다행인 중3답게 연우의 대답은 단순했지만 명료했다. 경은 주말에도 오전 8시가 넘어까지 늘어지는 법이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잠에 들기 직전에 항상 침대에서 정자세로 기도를 했다. 그녀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잠에서 일어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도를 했다.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그녀 자신뿐이었다. 연우와 함께하는 주 3회 운동을 경은 2년째 아프지 않는 한 먼저 거르는 법이 없었다. 인테리어에는 관심이 없어 새로운 가구를 들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침대며 장, 마루를 항상 단정히 닦고 정리했다. 집안일을 쌓아두는 것은 그녀에게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경은 만인의 취미생활인 영화감상이나 독서마저 흥미를 붙이지 못할 만큼 다소 재미는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경은 최소한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에는 흔들림 없이 충실했다. 그 충실함으로 삶에 깊은 뿌리를 내려갔다.


연우가 아홉 살 때 대답했던 경에 대한 존경의 이유는 좀 더 자세했다. 

“우리 외식했을 때, 화장실에 막 똥이 있는 거야. 근데 엄마가 나중에 혼자 다 치웠어."


 경은 좀 그런 사람이었다. 그 화장실이 다른 사람의 사업장이건 자기 집이건 자신이 주인이건 손님이건 간에 자기 눈에 보인 그 똥은 자기가 치울 똥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은 자동으로 자기 일이 되었다. 굳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희생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이 사람이 그랬다. 김 씨 집안의 며느리로서도 이모들과 외삼촌의 언니이자 누나로서도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도 말이다. 그렇게 모든 일이 자기 일이기에 투덜거리는 법도 없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말은 안 했지만 경을 존경했다. 경은 서로가 더 빠르다며 달릴 때, 아예 흐름을 바꾸곤 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가는 차 안에서 가족들이 시시콜콜하게 각자의 연애담을 나눌 때였다. 각자가 항상 연애를 하면 자기는 항상 더 사랑받는 쪽이라고 자랑처럼 뻐기고 있었다. 심지어 경의 남편인 진마저 운전대를 잡고 “너네 엄마가 나를 많이 쫓아다녔지.”하며 장난기 어린 눈으로 경을 곁눈질했다. 자식들은 엄마도 한마디 해보라며 경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경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앞을 보고 앉아있던 곧은 자세로 차분히 말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

 

 리나에게 엄마인 경은 호수였다. 장자는 참된 스승이란 제자가 아무리 돌을 던져도 곧 평온해져서 그 모습을 비춰줄 수 있는 넓디넓은 호수 같은 자라 말했다. 리나가 대학 강의에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리나는 영감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경에 대한 에세이를 써 내려갔다. 리나는 대체로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온몸에 문신이 있는 폭주족이었던 남자를 사귄다던가, 수녀가 되겠다라던가 하며 가끔 자기 깜냥보다도 큰 돌들을 낑낑대며 경에게 들고 왔다. 어떤 엄마들은 그럴 때 딸을 붙잡고 같이 울거나, 정신차리라고 흔들거나 혼을 내겠지만 경은 좀 달랐다. 예의 그 평온한 표정으로 리나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랬구나.’ 정도의 말만 덧붙였다. 한참을 텀벙텀벙 돌들을 던지고 나면 리나는 개운해져서 호수 같은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면 리나는 어떤 선택을 했다. 경이 한 것이라곤 리나를 비춘 것뿐이기에 모든 선택은 리나의 것이 되었다. 그랬기에 리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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