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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Apr 30. 2021

손이라는 게

 그 날도 나는 헝클어진 머리에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발을 동동거리는 둘째는 카시트에 앉히고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숨을 고르며 운전을 했고, 골목으로 차가 들어선 참이었다. 벚나무가 꽃은 다 떨어졌지만 연둣빛 잎을 흩날리며 아이와 나를 맞이했다. 어느새 봄과 여름의 경계구나. 4월이면 아직 이르지 않나. 5월쯤에야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은데. 기후변화 때문인가. 이런저런 흩날리는 생각들 속에서도 따뜻한 봄기운에 마음도 따스해진 찰나였다. 골목에 주차를 하는데 주차공간 뒷편에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보였다. 보행자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아무리 느리게 움직이는 차라도 위협적이니까. 혹시나 싶어 조심조심 후진을 했다. 휠체어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를 멈춰세우고 뒷자석을 돌아보니 둘째 아이가 잠들지 않은 채로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에 두고 내리기는 글렀구나 싶어 차에서 내려 아기띠를 둘러메었다. 

“우와~”

 소리가 들린 곳은 차 뒷편 휠체어였다.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손을 내미셨다. 따뜻한 봄기운과 너그러워진 나의 마음과 유년을 조모와 보낸 기억이 내 손을 할머니에게 내밀게 했다. 활짝 웃으시며 건네신 손을 나도 활짝 웃으며 잡았다. 할머니 얼굴을 보던 내 시선이 할머니 손에 닿았다. 두개의 손가락은 한마디 뿐이었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안으로 굽어 있었다. 마음이 흠칫했다. 오른쪽 편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허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곧 휠체어가 향하고 있는 곳이었다. 할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아저씨가 트럭을 고치며 쑥쓰럽고도 고마운 웃음을 짓고 계셨다. 나도 따라 방글방글 웃고 차에서 둘째를 꺼냈다. 다시 할머니가 더 크게 외치셨다.

“우와~~!!!”

 아까 내 손을 향하던 것보다 더 힘껏 할머니는 손을 내밀고 계셨다. 아까 흠칫한 내 마음이 손을 타고 할머니 마음까지는 가닿지 않았나 보았다. 나는 또 방글방글 웃으며 왼손으로 아이의 손을 들고 할머니께 인사를 시켰지만 오른손으로는 품안의 아이를 더 꽉 안았다. 그리고 첫째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첫째가 오도도 뛰어와 내 손을 잡았다. 아까 내가 할머니와 잡은 그 손이었다. 

“엄마, 개미야!”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끌고 아이들 틈에 모인 컵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는 내내 내 손을 꼬옥 잡은 채로 컵 안에 잡아놓은 개미를 보며 조잘대었다. 내 신경은 온통 손에 가있었다. 할머니는 마스크도 안쓰고 계셨는데. 우리 첫째는 아직 손가락을 빠는데. 

 이미 내 손과 접촉된 아이의 손이었다. 그 손이 아이 입으로라도 들어가지 않게하려 나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머리속에서는 창궐한 바이러스가 이미 할머니의 손에서 내 손으로 옮겨붙고 아이의 손으로 간 것이 그려졌다. 호스로 물을 틀고 있던 선생님이 눈에 띄였다. 

“선생님, 혹시 아이 손 좀 닦일 수 있을까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이의 손에는 모래가 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부러 하원길에 아이 손에 묻은 모래를 물로 닦아달라 청한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다. 그래, 코로나 시대 잖아. 손을 덥석 잡다니. 조심성도 없으시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의 다른 엄마들의 스쳤던 손과, 가게에서 물건을 건네받다 닿은 손에 나는 관대했다는 것을. 할머니의 뒤틀린 손, 초라해보였던 아들의 행색. 바이러스라는 적당하고 고상한 변명을 방패삼아 부끄럼도 없이 그 순간 한껏 속물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자주 주장했다. 맘충, 유충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연예인들이 보이콧을 당하는 혐오로 가득찬 이 시대에 대한 각성을. 특히 나는 노인혐오가 담긴 틀딱이라는 단어에 있어서는, 나를 키워주신 할아버지가 빼서 놓아두시던 틀니를 구름판 삼아 분노에 폴짝이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폴짝이던 손녀는, 할머니의 오그라든 손이 닿은 순간부터 아이의 손을 씻길 때까지 자기 안의 혐오가 제동장치도 없이 달리는 동안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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