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그러하다. 지각(perception)은 구성 작용(construction)이라서 익숙한 물체를 언제나 똑같은 모양과 크기, 색깔로 인지하는 '지각 항상성(perceptual constancy)'이 있다. 우리는 실제 대상과 현상을 그대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억에 새겨진 배경지식에 구성된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뇌의 필터를 거치기에 효율적인 뇌에 의해 우리는 같은 대상을 다각도로 보기 어렵고 새로움을 느끼기 어렵다.
그렇기에 일상에서도 새삼 느끼는 게 많은 사람은 비효율적인 사람이다. 뇌의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평소 "새삼 포인트"가 많거나 자주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여행의 효과를 얻는다. 같은 맥락으로, 동사로서 '여행하다'가 '여행 가다' 보다 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가다'를 쓰기 위해서는 목적격 조사 '을'이 생략되어야 한다) 꼭 물리적 장소를 이동하지 않더라도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은 아닐까. 방구석 여행, 일상 여행,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일상에서도 여행할 수 있다. 대상이 낯설어지고 문득 다른 관점을 마주하며 이전과는 다른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계관이 확장된다.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감정과 사람, 세계와 가치관을 알게 된다.
새로움,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느낄 수 있다. 새로운 것의 새로움과 익숙한 것의 새로움. 정말 처음으로 접한 세계와 대상이 있고, 이전부터 알고 있던 세계와 대상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일상에서 다름과 새로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일상을 벗어난 장소로 여행을 하고 새로움을 경험하고 흥분된 상태로 돌아온다. 여행을 통해 비활성 상태였던 세계에 불이 켜진다. 지각되지 못했던 세계의 조각이 뇌에 삽입돼 나의 세계관을 넓혀준다. 추가된 조각은 배경지식이 되어 또 다른 지각의, 선택의 참고사항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경험의 축적 세계에 살고 있다. 퍼즐 조각들로 이어 붙여진 자신만의 세계관을 머릿속에 펼쳐 놓고 지금을 살아간다. 어떤 퍼즐 조각은 과거의 빛바랜 퍼즐 조각을 대체하여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것이고 어떤 퍼즐 조각은 가장자리에 붙여져 세계관의 퍼즐 크기를 키울 것이다. 도달할 수 없는 완성형 인간을 향해 수행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는 절대 아니기에. 이 생에, 이 지구에 운명적으로(비자발적) 발 붙이게 된 "여행자"로서 세계를 풍부하게 경험하며 살고 싶다. 앞으로 어떤 퍼즐 조각을 얻게 될까.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ing the dots. 그 dots는 퍼즐 조각들이었다. 우리가 하나씩 얻게 되는 퍼즐 조각들이 그 조각 자체만으로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자꾸만 의구심이 들어 손에 쥔 퍼즐을 계속 쳐다보고 여기저기 맞춰본다. 그렇게 퍼즐들을 맞춰 가다 보면 큰 그림이 보이고 의미를 발굴할 때가 한번씩 찾아온다. 다만 500피스, 1000피스처럼 한정된 퍼즐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심이 요구될 것이며, 어디에 놓아야 할 조각인지 많은 시도와 궁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퍼즐판이다. 실패할 수 없다. 각자의 인생 퍼즐, 인생은 어쩌면 생각보다 재미있고 더 관용적인 게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