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어>, 오프라인 공간의 진화 전략으로 본 관계의 핵심
세상이 변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첫사랑>,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처럼 시청률 60%가 넘는 드라마는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주말 드라마에 일상 묘사로 나오는 종이 신문 구독이나 TV 뉴스 시청은 더 이상 보편적인 모습이 아니다.
기존 시스템의 붕괴와 생활양상의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는 요즘이다. 이러한 변화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많은 이들의 생존 전략을 바꾸게 한다. 얼마 전 한 강연에서, TBWA KOREA의 조직문화연구소장인 박웅현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변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더 빠르고 더 재밌고 더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1인 미디어가 덩치 큰 매체를 이기는 세상, 매스 미디어가 사라진 미디어 생태계에서 기존 광고업계의 선두 기업은 생존을 위해 "아이디어 first, 미디어 follow"를 외치며 광고의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다.
'기존의 성공방식이 더 이상 공식이 아니다'란 말은 비단 광고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헤게모니가 이미 온라인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오프라인 리테일러도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감하며 생존전략을 찾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을 다시 오프라인 매장으로 오게 할 것인가(리:스토어). 이것이 요즘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의 고민이다.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결국은 본질
변화의 상황에서 더욱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오프라인 비즈니스에서는 '콘텐츠 first, 공간 follow'로 번역될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리모델링한다고 고객이 오지 않을 것이고, 재미있는 팝업 스토어로 사람들을 잠깐 모객하는 것은 장기적 사업 관점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 그 공간에 어떤 철학과 상품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가 리테일의 본질로서 사람들을 유인할 것이기에 공간의 외형 이전에 안에 담긴 것에 집중해야 한다.
<리:스토어>는 글로벌 유통 트렌드 전문가인 저자가 언택트 시대에 오프라인 기업들의 8가지 진화 전략을 제안하는 책이다. 내용을 단순히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생존 전략에 그치기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받아들인다면 브랜드, 기업, 그리고 개인 측면에서 타인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결국 리:스토어는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와 오프라인, 디지털과 온라인은 다르지만 닮았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에 견줄 때 옛 것 또는 사라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보면 아날로그는 단지 디지털과 같이 하나의 방식일 뿐 우리의 삶에 늘 공존하고 있다. 오프라인도 그런 맥락으로 우리의 삶에 늘 존재할 것이다.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내고 소비도 하지만 그 외의 삶은 오프라인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프라인도 온라인에 뒤처지는 개념 또는 옛 것의 의미가 아니라 실재적 경험, 사회적 교류 등 오프라인만의 가치로 재정의되고 강화된다면 오히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성공방식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하고, 일하는 방식도, 업의 정의도 바꿔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들이 놓여 있지만 적자생존 비즈니스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진화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의 진화 전략 8가지
언택트 시대, <리:스토어> 저자가 제시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진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Retail Therapy : 일상에서 일탈을 만끽하는 공간 제공
2) Retailtainment : 당연한 상품 콘셉트나 경험 요소에 의외성을 더해 재미와 영감 제공
3) Retaili Lab : 실험적인 신선함으로 고객의 시간 점령, 데이터 수집 공간으로 활용
4) Reinventing Space : 새로운 스타일과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Z세대 특성에 맞는 공간 기획
5) Re-Analog : 디지털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 간 "찐" 교감과 실재적, 차별화 경험 제공
6) Re-Physitial :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온라인의 편의성 구현
7) Re-Clean : 매장 면역력의 가시적 제고
8) Re-Green : 세련되고 쿨한 친환경 경험 제공
세부 내용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1500명의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오프라인 쇼핑을 선호한다고 답했고(81%), 그 이유로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세계와의 단절 기회'를 택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만큼 반대급부로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같은 맥락으로 Z세대(46%) 가 밀레니얼 세대(38%)보다 본인의 정신건강을 더 우려한다고 응답한 배경에는 태어나면서부터 SNS에 둘러싸여 있다는 피로감이 있다. 그래서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오프라인은 앞으로도 사람들이 찾을 것이다.
또한 '친환경 메시지에 소비자들이 구매로 답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냉철한 조언도 흥미로웠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며 많은 기업들이 ESG 경영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ESG를 구현하고 있는지 점검하게 되는 대목이기 때문. ESG 부서들이 신설되고, 관련 메시지를 담은 광고들이 늘어나는 추세가 보여주듯 이제는 친환경과 공정 거래, 경영의 투명성과 진정성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높다.
그러나 아무리 메시지가 좋아도 상품의 질이 좋지 않으면 ESG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본질을 놓치지 말라는 것.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일의 외형에 매몰돼 주객이 전도되기 쉽지만 재화와 서비스의 본질이 튼튼해야 부가적인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을 짚어준다.
책에서 제시하는 8가지 전략 모두, 결국은 자기만의 철학(본질)을 가지고 그 정체성을 세련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는, 내 사업장은, 내 상품은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힐링을 줄 것인지, 신선한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도울 것인지 등.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은 해당 목적을 갖고 그 공간과 상품을 찾는다.
나의 색깔은 무엇인가, 개인의 생존법
철학과 정체성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자기만의 색깔에 대한 니즈는 코로나 시기에 더 커졌다. 코로나로 많은 관계가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매장에 쇼핑하러 갔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구매를 하자 오프라인은 목적성 방문이 강화됐고, 사람 간의 만남도 습관적으로 약속을 잡았던 것을 그만두고 관계의 밀도와 만남의 목적을 따지게 된다.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지만 굳이 그 장소를 방문하는 이유가 오프라인 기업의 가치이고, 내가 이 사람을 안 만나도 되지만 굳이 만나는 이유가 그 사람의 가치이자 관계의 효용을 의미한다.
생각의 화살표를 재조정해 나에게 적용해 보자. 나는 얼마나 많은 만남을 갖고, 누구에게 만남을 제안받았나. 다른 사람이 굳이 나를 만나자고 하는 이유, 그것이 나의 가치이자 나의 본질일 것이다.
<리:스토어>를 통해 오프라인의 생존전략을 공부했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게 개인의 생존전략과 일맥상통한다고 느끼며 본질의 가치를 다시 상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