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하게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고전역학의 대가 아인슈타인은 이 세계를 인과가 분명한 결정론의 세계라고 보았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과학을 통해 세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학교에서 배운 세계관에 따라 수학과 방정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렇게 뉴턴의 F=ma의 단순 공식으로 세계가 설명된다면 살기 편하겠으나, 질량(m)은 엄밀히 고도에 따라 다르고 가속도(a)가 항상 초기조건을 유지하는 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삶을 살아내며 느껴왔듯이 세상은 1,2차 방정식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20C 등장한 양자역학이 확률론의 세계를 가져왔다. 보이지 않던 세계로의 인식 확장.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입자 자체는 확정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찰 시 광자의 영향으로 입자를 정확히 관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을 좋아하는 일반인으로서 어느 정도 양자역학의 재미를 알아가다가 양자 얽힘에서 막혔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라고 말한 것에 위로를 받으며 양자역학의 메시지를 나름 음미해 본다. 1) 어떤 관점을 갖고 바라보는지에 따라 세계는 달리 보인다. 2) 세상의 모순은 자연스럽다.
먼저, 거시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거대한 계획과 규칙 속에서 만물이 움직인다. 얼추 큰 흐름이 보이듯 뉴턴 방정식이 성립하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이 입자들은 충분히 커서 광자에 영향을 안 받는다. 보이는 대로 믿고 보이는 대로 이해해도 문제없다. 어느 정도 흐름이 있다는 것,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주고 미래를 대비하게 한다.
예를 들어, 멀리서 보면 강물도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가까이 가서 강물의 입자적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제각각 전후좌우 움직인다. 세상을 결정론적, 통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어느 정도 흐름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각 개인의 삶은 자유의지(있다고 믿는단 전제)가 개입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볼 것인가. 한 가지 관점만 고수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 두 관점을 다 인정한다면 세상의 모순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전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다'라는 말에서 파동이란 우리 머릿속 떠오르는 진동 곡선이 아니라 확률을 의미한다. 그 위치에 있을 확률. 이런 확률론적 세계에서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듯한 'A는 ~이면서 ~이다'라는 말이 양자중첩, 양립, 이중성을 인정하고 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도 한 강연에서 말했다. "양자역학 세계가 이상하다 보니 세상에 이상한 것이 있나, 이상하다는 것에 무뎌진다. 인간이 느끼는 이상하다는 것은 중요한 판단근거가 아니다. 그것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스스로를 우주의 먼지라 부르는 우리 개개인도 미시의 확률론/가능성의 세계다. 0으로 단정할 수 없고 near Zero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다양성과 가능성을 내포한 확률론의 세계에선 모순처럼 보이는 게 이상하지 않고, 우리 개개의 존재 역시 본질적으로 이중성과 변화를 내포한다. 가끔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 하겠는 순간들,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 이상해 보였던 것들이 다 그럴 수 있음을 양자역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양자역학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양자역학을 통해 세상에 감각과 이성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