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이 된 피터팬 Dec 25. 2023

철학적 질문에 뇌과학이 답한다

나는 누구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뇌과학적 고찰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휴대폰이라면? 같은.


내가 휴대폰이라면 뇌 OS가 모든 활동을 지배할 것이고, 집과 직장, 학교 및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app이 될 것이며, 서사정체성(장소, 이벤트, 사람, 배움 등)이 콘텐츠를 이룰 것이다. 적정 수준의 배터리 충전을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작동할 것이고, 충전이 필요할 경우 절전모드로 들어가 이상신호 또는 경고를 보낼 것이다. 아무리 좋은 app과 콘텐츠를 담아도 휴대폰 자체 작동이 수월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뇌가 보내는 신호들과 신체가 보내는 징후(액정에 경고 뜨듯)를 잘 해석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관장하는 뇌 OS가 궁금해진다. 도대체 나는 어떤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걸까. 뇌의 작동 방식을 알면 나를 수월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답을 알고 싶어 뇌인지과학 정재승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놀이와 혁신,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토크 콘서트).


1.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건 호기심이야


  AI가 발전할수록 사람과 기계가 비교당한다. 기계는 전기만 주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으니 사람보다 더 효율적인 노동력이다. 좋든 싫든 AI가 탑재된 기계들이 사람의 노동 부담을 덜어주는(혹은 일자리를 뺏는) 방향으로 산업은 움직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와 '일자리'를 두고 싸우기보다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직업,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만드는 데 개인은 노력할 수밖에(물론 일자리에 대한 정치적 논의는 필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것도 생성형 AI가 나오면서 이에 대해 많은 회의론이 나오고 있지만 완벽하게 대체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지금부터 나의 일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계와 사람의 차이를 짚어본다. AI의 작동 기제는  Stimulus-Response paradigm이다. 명령과 같은 자극을 줘야 그에 대해 반응한다. Chat GPT한테 질문을 하면 방대한 DB에서 정보들을 엮어 답변을 출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우리는 Question-Answer paradigm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것의 답을 찾는다. 답변을 도출하는 시간은 기계보다 늦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질문과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나 역시도 호기심이 삶을 인도한다.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라는 답이 없어 보이는 질문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변하게 만들까?", "사람들을 동기부여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등의 업무적 질문들까지 다방면에서 궁금한 것들이 많다. 그 답을 찾고자 책도 읽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그렇게 답을 찾아다니다가 '아하 모먼트, 유레카 모먼트'가 왔을 때 짜릿함을 느낀다. 실제로 질문에 답을 찾을 경우 도파민이 분비되게 뇌가 설계되어 있다고 하니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학습하는 건 짜릿함이 맞다. 이렇듯 호기심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은 실로 즐거운 일이다.


질문을 던지는 본능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부가가치의 기회를 찾는 것은 사람에게 특화된 것이리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고유성이 위협받는 이 시대에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 각광받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세상을 다 알고 있다는 태도로 살아가기보다는 모든 게 다 궁금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쭉 살아가고 싶다. 나의 일을 찾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늘 짜릿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2. 책 읽기 vs 유튜브로 공부하기, 다 똑같을까?


과거에는 책만이 공부 수단으로 여겨졌다. 분명 TV로 유익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컴퓨터로 공부하고 있는데도 부모님은 왜 놀고 있느냐는 눈치였다. 그러나 요즘은 인터넷강의가 보편화되었고 유튜브에 워낙 좋은 콘텐츠들이 많다 보니 꼭 책으로만 지식을 학습할 필요는 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더 나아가 오히려 책이 더 비효율적인 공부방법이라는 주장들도 나온다.


움직이면서 책은 볼 수 없지만 유튜브는 들을 수 있기에 나도 영상시청 시간이 엄청 긴 편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영상 콘텐츠들이 제공하는 효율적이고 편한 지식 주입을 애용하고 있다. 떠 먹여주는 지식이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래서 잘만 활용하면 유튜브를 통해 세상의 많은 영역을 알아가기가 수월하다. 실제로 나이 어른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놀라는 게 내가 그 나이에 몰랐던 많은 것들을 이 친구들은 알고 있다는 것. 세대가 갈수록 정보접근성과 기술의 편리로 똑똑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영상매체가 책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나는 아직도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종이책으로 읽을 때 더 와닿는 배움이 있다. 그런데 이게 느낌적인 느낌만은 아니었다. 뇌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정재승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우리의 뇌는 정보 사이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추론을 하고 연결고리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문장과 문장 사이, 상황과 상황 사이의 빈틈을 채우는 과정에서 뇌가 열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중간중간 멈춰서 생각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다시 읽기도 하며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오히려 텍스트가 주는 완벽하지 않음이 뇌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반면, 영상은 빈틈없이 초마다 촘촘하게 지식을 채워준다. 더구나 몇 배속에 익숙한 우리는 뇌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밀도 높은 지식이 흘러넘치게 주입한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배운 게 있겠지만 흘려들은 지식들 중 내 것으로 남는 지식과 배움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에 그치는 것과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든 것은 질적 차이가 있기에 어떤 유형의 학습을 하는지에 따라 매체를 달리할 필요성은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진짜 그렇다. 창의성은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재해석, 재정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능력이지 않을까. 그래서 창의적인 사람은 맥락을 잘 고려해 의외의 연결을 잘 해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책이라는 매체가 좋은 이유는 텍스트 읽기를 통해 끊임없이 연결을 찾아내라고 뇌를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3. 잘 놀고 행복하려면 자기 통제권!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고 그 결과 각자 다른 정도의 행복감을 느낀다. 틀린 건 없다. 행복 역시 답이 없으니까. 그러나 뇌과학자가 봤을 때 행복과 만족감의 핵심은 자율권과 자기 통제권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싶으면 내가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있는지 파악해 보면 대강의 만족도가 파악이 된다고(그 외의 조절변인, 매개변인도 고려해야 하지만). 행복은 워낙 주관적 영역이라 잘 모르겠지만 얼추 맞는 말 같다.


그리고 잘 논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렸을 적 놀이를 생각해 보면 어떤 놀잇감이든 재밌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모래 위에 땅따먹기 그림을 그려서 놀기도 했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룰을 만들어 잡기 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집에 쌓인 상자들을 자르고 붙이고 하며 만들기 놀이도 했다.


이렇듯 내가 어렸을 적만해도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개념의 놀이였다면 점점 발달과 학습 차원으로서 놀이가 주목받고 있다. 옛날 같으면 놀지 말고 공부해!라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놀이가 창의력과 사고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놀이 학습"이라는 말도 생겼다. 잘 놀면 뇌의 시냅스 연결이 증가한다고 하니 잘 노는 것은 학습과 발달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렇다면 잘 노는 방법은 뭘까? 정재승 교수에 의하면,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놀이는 궁리하게 만드는 놀이라고 한다. 모래성 쌓기가 그렇고, 그림 그리기가 그렇다. 아무런 틀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대로 놀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놀이터에 가면 기본적으로 이렇게 놀아야 한다가 세팅된 놀이환경이다. 그네는 이렇게 타야 하고, 시소와 미끄럼틀은 이렇게 타야 한다. 따라서 뛰어놀게 한다는 점에선 좋아도 놀이터에선 궁리하는 일이 생략된다.


결론적으로 행복감도, 잘 노는 것도 자기 통제권이 중요하다는 뇌과학적 레슨! 내 의지대로 일하고 노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한 일이다. 요즘 나는 얼마나 자기 통제권을 갖고 살고 있는지 점검하게 된다. 이렇게 긴 시간 뇌과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것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체 없는 질문들에 대해서 인문학적인 질문들을 쌓아가며 답을 찾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뇌의 작동기제를 이해함으로써 또 다른 답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뇌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아는 것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