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은 당연히 될 거라 했지만 진급하지 못했습니다
<1년 전 기록을 이제는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장통을 겪은 후 성장이었음을 깨달은 자의 기록입니다>
진급 누락 통보는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귀하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감정적으로는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고과도 나쁘지 않았고, 면접도 평이하게 흘러갔으며, 그간의 성과에 대한 주변의 평도 긍정적이었다(팀장님과 파트장님 뿐 아니라 모두가 너는 당연히 된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다. '왜 내가 안 되었을까?' 이 질문을 며칠간 머릿속에 반복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쓰나미처럼 일었던 감정이 누그러지고, 다양한 조직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됐다. ‘조직’이라는 복합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리고 이 일은 단지 ‘나의 실패’가 아닌 ‘조직에서의 배움’이 됐다.
무엇보다 명확히 인식한 것은, 조직에서의 승진은 단순히 성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직장에서의 보상은 단순히 퍼포먼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가 기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년 달라지고, 시기적 요인과 승진율, 부서 상황, 리더의 의사결정 방향, 조직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성실하고 높은 퍼포먼스를 냈다고 해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조직 생활에서 받아들여야 할 구조적 현실이었다.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조직 시스템의 다차원적 작동 방식에 따른 결과임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이 경험을 통해 고과를 챙기는 것 또한 직장인의 중요한 역량이라는 점도 배웠다. 조직이 보상을 제공하기 전에 먼저 나의 공헌을 분명히 드러내고, 평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하며 때로는 리더에게 명확하게 기대와 목표를 요청하는 태도도 필요한 것 같다. ‘일만 잘하면 된다’는 믿음은 이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배움은 조직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거리감 있는 이해다. 회사는 인격이 있는 주체가 아니다. 기대와 로열티를 갖기보다는 합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해야 한다. 그 안에서의 실망이나 예측 불가한 결정은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감정을 소진하는 것은 개인의 손해다. 회사는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냉정한 계산이 우선하는 구조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모든 사실이 비참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폭풍 같았던 감정이 잔잔해지고 나니, 내가 얻은 것들이 비로소 보였다. 비록 승진이라는 성취는 얻지 못했지만 나는 그동안 성장했다. 진급 여부와는 별개로 나는 지난 3년간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교육 프로젝트들을 완성했다.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 직무 교육과 온보딩 콘텐츠, 구성원의 직무 몰입을 위한 커리큘럼, 멘토링 프로그램 등은 교육 패러다임을 크게 바꿨고, 긍정적인 피드백들을 받았다. 내가 만든 결과물들을 되짚어보며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나에게는 중요하다. 누군가의 성장에 기여했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가치를 실현했다는 사실.
그리고 직장 선배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도 이번 누락으로 얻은 큰 수확이다. "열심히 한다고 보상이 당연히 따르는 건 아니야. 그리고 노력은 그것 자체로 너의 삶의 태도야”, “회사에 너무 올인하지 마. 분산 투자해야 한다고. 네가 회사에 너무 바쳤기 때문에 지금의 충격이 더 큰 거야.” 앞으로 내가 회사 생활을 할 때 종종 꺼내서 볼 말들이다. 일에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으로서, 시간과 에너지, 마음의 투자를 조화롭게 운영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승진 누락이라는 경험은 매우 큰 충격이었지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어쩌면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는 이 정도의 충격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승진 누락을 조금 빨리 겪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물론 당장의 승진은 중요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조직 안에서 내 역할을 나답게 수행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성과를 쌓아가는 힘이다. 그러니 감정은 정제하고 결과는 수용하며 방향은 유지하려 한다. 성과와 보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방향을 점검하며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결국 더 긴 커리어 여정에서 나를 지켜줄 자산이라는 것을 믿는다.
* 힘들었던 당시, 인생에 통달한 느낌의 선배님께 진급 누락 소식을 전하며 어떤 태도로 회사를 다녀야할지 물었다. 그의 조언은 이랬다. "내 노력, 내 열정과 보상은 당연히 연결되어 있는게 아니라는 거. 열심히 해도 다 열심히 해서 보상을 못 받기도 하고.열심히 안해도 운이 좋아 성공하기도 하고. 보상과 선물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또 노력은 내 삶에 대한 자세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너가 최근에 너무 네 24시간 중 회사의 비중이 크긴 했어. 그렇게 몰빵하면 더 충격도 크니 분산투자 하자. 조견오온개공. 결국 존재보다는 관계가 우리를 매순간 규정하는 것인데 내가 콘트럴 할 수 있는 나의 인식, 나의 관계를 바라봄 새롭게 하는데서 시작해. 그런거 있잖아.우리가 볼때는 이번 승격이 안된게 너무 슬픈 일인데 뭔가 신이 있어서 우리 삶 전체를 본다면 너의 인생에서 이번 승격은 안되는 게 나아. 그런 게 아닐까? 저녁이나 먹자"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좋은 선배님들이 곁에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