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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색 고양이 Jan 26. 2021

"노 프라블럼"  

인도 첸나이에서

 인도는 역설로 가득한 목적지라고 생각한다. 처참한 위생과 도로엔 소와 리어카, 오토바이가 뒤엉켜 카오스보다 더한 무질서에 정신이 혼미하다가도 돌아올 땐 가슴 속에 하나씩은 무언가를 품고 오는 그런 곳 말이다. 나는 왜 인도를 꿈꿨지? 고등학생 때 읽었던 시인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책이 근원이다. 그 책으로 인도에 환상을 갖게 됐다는 사람이 늘었다던데. 그냥 가보고 싶었다. 이유가 필요한가? 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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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대학교 4학년 1학기. 남부럽지 않은 대학생활을  편이었지만 막상 졸업반이 되니 공허했다. 손틈새로 빠져나간 부질없는 인간관계도 그렇고 학점, 토익 하는 것들은 따분했다. 결국 여름방학  남인도 첸나이로 2주간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원래 인도는 전년도에 배낭여행 가려고 했는데 하필 델리에서 테러가 나면서 무산됐다. 여행 기회없이 졸업하려나 싶던 찰나, 학교게시판에서 현대기아차에서 파견하는 봉사프로그램 포스터를 보았다. 진부하지만 정말이지 운명을 느꼈다. '이번이 아니면 영영  갈지도 몰라' 하는 마음. 면접이 수업과 겹쳤지만 뭣이 중한가? 필사적으로 면접에 임했고 그렇게 현대의 비호를 받으며 인도로 떠났다.


 42도가 넘는 여름볕과 부족한 물, 땀의 시간이 이어졌다. 식사는 현지의 문화를 존중해 손으로 먹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학교의 아이들과 물감을 만지고 놀이터 흙을 퍼나르고 페인트를 칠했다. 소를 신성하게 여기는 그곳의 종교문화 때문에 소가 길에 서 있으면 차들이 멈추거나 우회했다. 한번은 아침에 이동하던 우리팀 버스(한국 70년대에나 탔을법한 낡은 차)가 옆차선 차와 충돌해 눈이 질끈감기는 사고도 겪었고, 숙소의 물과 전기는 이따금 끊겨 남자 단원들은 얼굴에 비누칠을 못 씻어 속옷 바람으로 복도를 뛰어다녔다. 장비가 충분치 않은 환경에서 페인트칠 봉사를 하던 날, 나는 결국 밤에 쓰러져 다음날 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나 눈물도 훔쳤다.


 아플 틈도 없이 현지의 시간이 흘렀고 스무명이 넘는 팀원들과 공동생활을 하다보니 시간이 수록 하나둘 크고작은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지 인도인 코디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No problem' 이었다. 페인트를 잘못 칠해도, 자빠져도, 찢어져도, 준비가 늦어도, 마이크가  켜져도  '노프라블럼'이었다. 덥고 마음은 급한데 대체 저런 무책임한 낙천성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맥이 풀리고 답답했지만 울화통 터지는건  마음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도 그렇게 되어갔다. 한국에서는 마시다 버릴 콜라 한모금에 두눈이 번쩍 뜨일만큼 충만감을 느끼고, 주소나 신발도 없는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에 마음이 녹는 , 손이 까져도 노프라블럼, 배가 고파도 노프라블럼, 더러워도 미워도 노프라블럼. 그냥 웃고 느긋하게 순리대로 하다보면 결국 뭐라도 되어 있었다.


 그때의 시간은 이제 너무나 멀어져서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오지게 고생은 했는데 서울에선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다른 결의 기쁨을 경험했다,정도만 남아있다. 삶이 어떻게 전개될 지 한치앞을 모르겠을때 문득 그 해 인도를 떠올려본다. 인도에서 분명 지저분하고 참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천진하게 '노 프라블럼'하고 양쪽으로 고개를 까딱까딱 하면 다 괜찮을 것만 같았던 그때가 자꾸 생각난다. 어느때보다 지금 내 삶에서 그 주문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 모든 것이 있는 서울의 삶 역시 녹록치 않은 것을 보면 가진 것이 삶의 충분조건이 아님은 분명해보인다.


남인도 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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