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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이 Jun 26. 2022

나의 해방일지

나를 만드는 건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

최근에 들었던 나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거다. '너는 중세 시대 때 태어났으면 마녀라고 몰려서 마녀사냥 당했을 거다.' 언뜻 공격적으로 보이는 이 문장은 놀랍게도 내가 줄곧 되고자 했던 나를 잘 표현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모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냥 나는 내 스스로를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는 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다들 받아들이는 당연한 명령과 규칙들이 납득이 안 됐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께 혼이 나더라도 이해가 안 되는 논리에는 꼭 한마디씩 대들고는 했다. 얌전한 학생이던 내가 해왔던 반항이란 게 다 결국 이 정도의 것들이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내가 싫어하던 선생님이 학생주임이 됐다. 그 선생님은 흰 양말이 패션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내 흰 양말을 금지시켰다. 그 선생님의 한마디에 천명이 가까이 되는 전교생은 흰 양말 대신 검정 양말을 신어야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반은 장난 반은 진심으로 친구들한테 다같이 시위를 하자고 했지만 그걸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대신 매일 아침 주머니에 흰 양말을 넣고 등교를 했다. 교실에서 양말을 갈아신었고 어쩌다 학교에서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흰색 양말을 들키는 날에는 명찰을 숨기고 도망을 갔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흰 양말의 존재가 힘이 됐다. 가만히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표식 같았다. 그냥 이런 소소한 반항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부조리한 체제에 순응하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한심한 사람들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게 더 한심한 나를 만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12년의 학창 생활은 나를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어 대학에 입학하던 나는 어느덧 '사회화가 된’, 명령에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성인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우리 학교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돌아가며 본관을 점령해 총장을 탄핵하자는 주장을 펼쳤고, 전교의 모든 벽은 대자보로 뒤덮여있었다. 과제에 바빠 학교 문제에 소홀한 조예대의 벽에는 '관조 예대'라고 쓰여진 자조적인 스티커가 하나둘 늘어갔다. 당시 1학년이던 나는 그 스티커를 보며 생각했다. 바빠 죽겠는데, 내 일상을 살아가기도 힘든데, 총장이 바뀌든 말든 내가 왜 내 시간을 바쳐서 시위를 해야하지? 그리고 그 기저에는 이런 믿음이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기득권과 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왜냐하면 그게 내가 12년간 공교육을 통해 배워온 진리이니까.


그렇게 반년이 덜되게 지났다. 어느 날 전공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학교 전체에 함성이 울렸다. 살면서 처음 들어본 소리였다. 어떤 스포츠 응원보다 간절했다고 해야 하나 그 단어 없는 함성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그날은 교수행진이 예정된 날이었다. 학생들의 뜻에 동참하는 교수님들이 학교를 행진하기로 되어있었고 이를 촬영하기 위해 수많은 기자가 아침부터 전교에 깔려있었다. 그날 허망하게 총장은 교수 행진 직전에 사퇴 의사를 밝혔고, 나는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친한 언니와 함께 예정대로 진행되기로 한 행진을 구경하러 갔다.


교수 몇몇이 연설을 하고 학생들은 다들 학생회에서 나눠준 마스크나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당시 우리 학생들 얼굴을 찍어서 인신공격하는 댓글이 많았다). 우리는 그 사람들 사이에 섰고 어쩌다 보니 행진의 중간쯤에 합류해 학교를 돌았다. 본관에서 시작된 행진에는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하나둘 추가되었고, 결국 그 줄이 교내를 둥그렇게 둘렀다. 앞도 없고 뒤도 없는 하나의 고리가 되어서 우리는 해방을, 뭔지도 모르는, 어쩌면 처음 맛보는 그 단어를 외쳤다. 대강당 계단에 올라서 구호를 외치는 순간 나는 숟가락을 얹었다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통일감, 고양감, 그리고 해방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해방의 순간, 그리고 이후 총장의 사퇴에서 이어진 정유라 게이트와 탄핵 시위는 스무 살의 나에게 세상 어느 것보다 큰 재산이 되었다. 사회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고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런 확신과 경험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준 거다. 그 이후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에 한해서는 열심히 고집을 부릴 수 있었고 또 내 고집을 통해 행한 일에서 좋지 않은 결론이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덜 휘둘렸고 나만의 기준이 하나둘 생겼다.


최근에는 내가 쌓아온 나라는 사람에 대한 기준이 무너지는 일들이 있었다. 부조리한 일을 당하면서 한마디도 못 하는 내가 한심했고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또 순응했다. 화가 나지 않았고 항상 머릿속에 가득했던 의문들도 흐려졌다. 그걸 깨달은 날에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게 가스라이팅인가? 점점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에 익숙해진 개구리가 삶아져 죽게 되는 것처럼 나도 지금 점점 죽어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관념적인 것들.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다양한 가치 같은 것. 그게 지금과 같은 자아에 대한 것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그리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절실하고, 또 나는 그런 순간들에 위로를 받기에. 낯선 땅에 있으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시름시름 앓았고 그 와중에 시간은 흐르며 나는 또 한 번 꺾이며 순응했다. 확신했다. 스무 살의 내가 쌓아준 어떤 멋진 믿음은 다 사라졌다고. 그렇게 30이 되고 40이 되고 50이 되면 나는 평범한 꼰대가, 사회 기득권이 되겠지.


그러다 LA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먼 곳에 있는 한 친구랑 전화를 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내가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도 참 다양하지만, 어떤 종류의 관계는 유독 귀해서 잘 찾아오지 않고는 한다. 나에게는 그런 관계가 바로 '관념적인 이야기'를 무한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나에게 맞춰주지 않고 그래서 이따금 의견이 달라 싸우게 되더라도 또 그런 의견 대립조차 내 안에 힘이 되는. 그래서 그 사람이 툭툭 내뱉는 말이 며칠간 고민하던 생각들을 한순간에 해결해주는 관계. 여태껏 나에게 그런 사람은 딱 한 명이었고, 앞서 말한 LA에서 말한 친구는 나에게 역사적인 두 번째 사람이었다.


무슨 일 없었냐는 질문에 나는 최근에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을 꺼냈다. 요지는 내가 당하고 있는 일보다도, 내 자아가 꺾이는 기분이 든다는 것. 내가 쌓아온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나도 결국 그들과 똑같이 늙어가리라는 것. 그 친구는 내 두서없는 설명에도 바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친구가 말했다.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건 역설적으로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부조리를 느끼는 순간들이라고. 그 순간들 속에서 분노를 느끼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게 나라는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고, 나는 여태껏 그렇게 스스로를 쌓아온 거라고.


듣고 보니 그랬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과 학교의 비리와 차별적인 행동들에 화가 났고 그 원동력으로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내 말에 설득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당시의 나에게는 그게 좋은 성적이었던 거다. 대학생 때는 시위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의 신상을 캐네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했고, 그 원인을 분석하며 나는 세상과 사회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의 나도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길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저들과 같아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오랜만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으니.


참 신기했다. 다른 이의 한마디에 갑자기 모든 게 괜찮아질 수 있다니. 무수히 나를 괴롭게 했던 일들이 오히려 나를 위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다니.


나를 만드는 건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 그게 사람이든, 사건이든, 내 내면의 어떤 것이든. 나는 덕분에 언젠가 찾아올 비극을 조금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단단해진다면 나도 언젠가 나를 위로해준 그 친구가 도움이 필요한 딱 그 순간에, 마법 같은 말 한마디를 건네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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