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다

첫 멈춤

by 리나신

오늘도 잠을 놓쳤다.

정시에 눕지 못한 밤이 또 늘었다.



첫 달은 12시간 잤고, 낮잠으로 2시간을 기본으로 잤다.

두 번째 달은 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 도서관을 다니며 나름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세 번째 달, 무너질 줄 몰랐다.



길다고 할 수도 있고 짧다고 할 수 있는 5년이었다. 생각을 해보면 전조증상은 계속 있었다.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상관없이 운동에 빠져서, 운동에만 월급의 70%를 소비했으니까.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면 다들 멋지다고 했다. 그 말에 홀린 걸까, 이 기간에 정말 다양한 운동을 접했다.


클라이밍, 요가, F45, 풋살, 아이스하키 등 재미있어 보이거나 흔하지 않거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싶으면 모두 신청을 하고 도전했다. 주 5일을 넘어 6일을 운동하려고 했고 하루에 두 번 운동을 한 날도 있었다.

몸이 아프다고 울부짖는 소리를 무시하면서.


그중 팀스포츠가 너무 재미있었고 잘 맞는다고 느껴져서 맞는 팀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렇게 운동에 미친 일 년이 시작되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구나 깨달은 것은, 오래 걷기 힘들어지면서였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해서 한 시간은 기본으로 걷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퇴근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조차 힘들게 느껴졌다. 2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다리가 무거웠고 다리가 계속 불편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생각을 해보니 무릎이 앞뒤양옆으로 통증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운동 후처리를 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운동 후 냉찜질을 시작했다. 운동을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깐은 괜찮았다.

그렇지만 통증은 삼일에 한 번, 예고 없이 찾아왔다. 몸은 이미 경고하고 있었다. 완전하게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시간에 500칼로리를 소모하는 고강도운동을 지속했으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일주일 중 6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운동을 하고 왔음에도 다음날 어떤 운동을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때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운동에서 만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고 이들도 운동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운동선수를 부업으로 하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만큼 운동에 진심이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잠을 자는 시간까지 포기했다.

4시간 자고 출근을 한 적도 여러 번 된다. 당연히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다들 그렇게 운동을 하고 출근하길래, 저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때마침 회사에서 큰일이 한번 터졌다.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증거도 없이 범인으로 몰렸다. 외부 소행으로 밝혀지며 사건은 끝났지만, 나의 마음은 남았다. 증거도 없이 내부 직원을 희생양 삼아 사건을 덮으려는 회사의 모습. 그 순간, 정이 떨어졌다.

다른 팀원보다 한 직급 높다는 이유로, 그들의 정치라인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깃이 되었다.

그때부터 합법적으로, 회사에 삐딱선을 탔다.


나름 열심히 운동을 했고,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제가 너무 집중을 안 한다고 하기 전 까지는.

아마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잘하는 사람과 동시출발을 하면 시선이 아예 잘하는 사람에게만 가있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고 패스를 잘 받았을 때에도 집중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들어왔다. 포지션을 잘 잡았음에도 팀원에게서 포지션을 떠나지 말라는 언급도 들었다. 그러면서 팀에 대한 애정이 떨어졌고 '내가 뭘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억울함과 속상함이 섞여 눈물을 쏟으며 집에 갔다.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이 날은 정말 오랫동안 울었다. 라인의 변경에 따라 포지션이 교체되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에 그런 포메이션은 배우지 않아서 그 팀원은 자신의 자리가 빼앗겼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큰 지적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는 운동만 남았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작은 지적이 크게 다가왔고 운동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운동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리를 해도 운동에 대한 미련이 떠나가지 않았고 다른 팀을 찾으며 또 몰입했다. 아마추어 경기를 시작하면서 그 몰입감은 더 강해졌다. 약간 중독증세를 보였던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번 좋다고 느끼면 모든 걸 쏟는 편이다. 끝을 보기 전엔 머릿속이 그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만족을 얻은 팀에서 그만큼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릎이 안 좋아서, 다음날 경기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다른 팀원들처럼 어서 회복하고 다시 돌아오라는 말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동안 열리는 모든 경기에 참여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회복하고 돌아와.'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지만 '제일 어린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 날은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경기 못 간다고 그랬더니 '그다음 날인데 와야지.'라는 말이 돌아왔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 경기 중 실수를 했고, 그런 경우가 처음이었기에 하면 안 되는 것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다들 뭐라고 하기 시작해서, 그제야 그것이 실수임을 인지했고 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그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밀치며 돌아가라 그랬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눌려왔던 생각들이 터져 나오게 된 것은.


집에 돌아가 끝없이 혼란과 분노와 수치심, 죄책감에 시달렸다. 운동 중 일어났던 일이니 웃으며 넘겨도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다.


마치 인생의 너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생각들이 내 발을 붙잡았고 마치 끈으로 묶은 것 마냥 움직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다음 달 운동에 접수를 하지 않았더니, 왜 접수를 하지 않느냐며 연락이 왔지만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넘어갔다. 그렇게 운동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또 일이 터졌다.

이유도 없이 업무를 못하게 했다.

모든 것이 대표의 마음대로였다. 권한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고 업무 협조 요청을 돌려보냈더니 그다음 날 빨리 업무 처리해 주라며 권한을 복구시켜 줬다.

정말 지쳤다. 대표에게는 회사가 장난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끔찍했다.

출근길은 숨이 막혔고 지하철에서는 멀미를 하고 오래 있으면 구토 증세가 발생했다.

퇴근을 하고 잠만 자거나, 핸드폰만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으로 퇴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면 어디로 갈까.

내가 이 회사에 붙어있던 이유가 조금 더 버텨서 업계의 다른 회사를 가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버텨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맴돌면서 하루하루 메말라갔다.

잠을 깊이 잘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았다. 이상하게 약을 먹고 자면 두통이 심했다.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그냥 먹고, 두통과 공허함을 갖고 지냈다.


충동이었다.

휴직 신청을 받는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왔고, 뇌를 거치지 않고 신청했다.

휴직 승인도 마지막날에 알려줘서 계속 불안감 속에 지냈다.

휴직 승인이 된 후 개인 사무용품을 모두 버리거나 팔아버리고, 키보드와 마우스만 집에 들고 왔다.

홀가분했다.



그렇게 휴직이 시작되었다.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