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다

물들어버린 일상

by 리나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항상 어려웠다.

세상은 다양한 주제가 가득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는 정해져 있었다. 연예인이나 그들의 가십들. 예능 프로그램과 맛집 토론들.

나는 그런 주제들에 관심이 없었다. 내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재미도 없었다.


내게 모든 것은 '흥미가 있고 재미가 있는가.'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었다. 재미가 없으면 몸을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면서도, 과연 업무 속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라는 걸 우선시했다.


일은 재미있었다.


어떻게 해야 내 실력을 올릴 수 있을까 라며 고민을 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관련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는 순간들이 좋았다. 직무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집에서 한 시간 반이 넘는 곳에 찾아가기도 했다. 처음에 이야기를 했던 것과 너무 다른 형태에 실망을 했지만 이 세상에는 나 말고도 다양한 형태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깨달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퇴근을 해서도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스스로 고민을 했다. 정말 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아버지 성향이랑 똑같아.'라며 뿌듯해하셨던 것 같다.

스스로와의 대화 없이 일 또는 연애에 매진을 했고, 나 자신을 외롭고 고독하게 만드는 청룡열차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익숙함이 문제였을까.

내가 순종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나를 붙잡아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내가 너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어.'

회식 중에 상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의 미래는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건데, 왜 나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겠지라며 스스로를 토닥였다.

애초에 이렇게 생각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리 상사에다, 멘토 같은 역할이라고 해도 남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그 문장은 불쾌감을 남겼다. 이 기억은 상자로 만들어 봉인했다.


나의 생각들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한으로 확장을 하는 섬의 세계에 관심사 또는 흥미 있는 주제가 생기면 섬이 생기는 구조다. 그리고 나는 배를 타고 이동을 해서, 그 섬에 들어선다. 그러면 해당 섬의 주제만 생각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나의 머릿속은 섬의 구조라고 스스로 정의 내렸다. 나만의 지도를 만들고 싶었기에 생각의 섬들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부유하는 섬들은 나의 관심사 변동에 맞춰 새로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종이에 담을 순 없었다. 판타지의 섬, 불안함의 섬, 목공의 섬 등 다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목공에 관심이 있었다. 지금은, 중앙의 제일 큰 섬은 글쓰기의 섬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에는 심리학의 섬과 트라우마의 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제일 구석, 깊은 곳에는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는 섬이 하나 있다. 이 섬은 언제 생긴 건지 알지 못한다. 그저 항상 같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방문하는 곳이었다. 크기는 작아서 금방 소멸될 줄 알았지만 마치 빙하처럼, 보이지 않는 땅이 더 넓고 깊은 섬이다.

이 섬의 이름은 나쁜 기억의 섬이다. 수많은 상자들을 만들었고, 각자 상자들에는 기억을 담은 후 자물쇠로 잠갔다. 이곳은 그렇게 상자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의 섬이 이미 상자들로 가득 차있었고 넘치기 직전이었다는 것을.


성희롱이었다.

단체 회식을 할 때, 다른 직원들이 담배를 피운다며 나가있었고, 상사와 둘이 있었을 때었다. 내 손을 잡고 '사랑한다.'며 고백을 했다. 회사에서 직급 있으신 분들 중에 동료들에게 틈만 나면 사랑한다며 애정 표현을 하시는 분이 있었다. 그 애정 표현은 이성, 동성 상관없었고 그만큼 동료에 대한 애정이 큰 분이셨다. 그래서 그 분과 비슷한 애정 표현인 줄 착각했다. 그 나이 때의 사람들은 다 그런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여름에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술 취한 채로 출근한 상사가 가슴을 빤히 쳐다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때문에 사무실에서는 항상 외투를 입고 다녔다.

늦은 시간, 집을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23시 이후 퇴근이면 택시비를 지원해 줬다. 근처까지 같이 가자며 상사와 다른 직원까지 세 명이 되었다. 택시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갑자기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는 것만 기억났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거리를 두었지만 도움 되지 않았다. 내게 왜 상사를 멀리 두느냐며 질문을 했고, 그저 얼 머무를 뿐이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술 마시며 풀라며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했다. 거절을 해도 계속 생겼다.

친한 직원들에게 토로를 해봤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나의 불쾌함은 그저 '네가 예민해서 그래.'라는 이유로 정리가 되었다.


신고를 할 수 있을까라며 방법을 알아봤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인사팀에 말을 하고, 회사에서 행동이 없는 경우에만 도움줄 수 있다고 그랬다. 인사팀은 믿을 수 없었다. 입사도 하기 전에 이력서를 보며 내게 부모가 없냐는 말을 가볍게 하는데 믿을 수 있을 리가.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이 사실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 무기력함은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시작은 출퇴근이었다.

지하철만 타면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답답함의 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졌고, 심박수와 합을 이뤄 중간중간에 지하철에서 내리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 괴로움을 운동으로 풀었다. 퇴근하고 운동을 갈 수 있게 스케줄을 조정하면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다. 목적의식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운동에 빠져들어갔다.


퇴근을 하고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다. 잠을 자는 것뿐 아니라, 집에 도착을 하면 움직일 수 없었다. 꿈적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핸드폰만 했다. 무의미한 시간만 늘어났다. 에너지를 밖에서 받는 타입이라 가만히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편인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누워서 잠만 자고 핸드폰만 했다. SNS를 제일 많이 했다.


일상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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