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이과생은 이론에 놀라고, 문과생은 인물간의 관계에 눈물짓고, 미대생은 그래픽에 감탄한다.'
인터스텔라가 개봉했을 즈음 인터넷에서 한 때 유행했던 밈이다. 이처럼 영화를 보고나면 우리는 각기 다른 감상을 쏟아내곤 한다. 영화가 끝난 뒤 각자 다른 감상을 나누는 것 또한 작품의 연장선상 위에 있다. 63아트에서 열린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는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이 사랑하는 영화의 순간들을 작가의 시선을 빌려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맥스 달튼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는 영화, 음악, 책 등의 대중문화를 모티브로 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이름을 알린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오리지널 일러스트와 함께, <스타워즈>, <이터널 선샤인>, <쥬라기 공원> 등 SF, 로맨스,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재해석한 일러스트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기생충> 작업으로 시작된 인연으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옥자>,<마더>,<설국열차> 등의 작품들도 전시된다.
맥스 달튼의 작품이 영화를 재해석한 일러스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작가가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고, 또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상상하며 전시장에 들어섰다.
흔히 사람들은 작가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 온갖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스토리를 창조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실 정반대죠.
주변사람들이 작가에게 캐릭터와 사건들을 제공한답니다.
작가는 그저 잘 지켜보고 귀 기울여 들으면서 스토리의 소재를 주변인들의 삶 속에서 찾아내는 거죠.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타인의 이야기를 듣죠.
지금부터 여러분께 전혀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제가 들은 그대로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온전히 전달해드리겠습니다.
- 맥스 달튼
맥스 달튼의 작품은 지도와 닮아있다. 하나의 큰 공간 안에 영화 전체를 담아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에서 인물들이 겪는 사건의 모습들이 손가락 만큼 작게 표현되어 있다.
맥스 달튼의 영화 일러스트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유추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숨은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는 재미를 준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주변 환경에 기대어 스스로를 설명하곤 한다. 어디에서 자랐고, 무엇을 좋아하며, 쉴때는 무엇을 하는지처럼 말이다. 이처럼 공간은 그 사람을 설명한다고들 한다.
전시장 한 켠에서는 여러 작가들의 작업실과 작가가 그려져 있는 일러스트 작업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판화 작업을 하는 앤디워홀의 방에는 깔끔한 회색빛 바닥에 반복되는 꽃 그림이, 잭슨 플록의 방바닥에는 그의 활동성을 보여주듯 군데군데에 페인트가 묻어있다. 프리다 칼로의 방 안에는 자화상 속 본인과 똑닮은 프리다 칼로가 반듯하게 앉아있고, 전시대에는 작은 조각들이 정갈하게 나열되어 있다.
작가와 방이 닮아있고, 또 그림과 방이 닮아있다. 이처럼 공간은 그 사람을 반영하기도 하고, 또 공간이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모든 작업실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데
모두 작가의 작품과 깊은 연관이 있어요.
예를 들어, 잭슨 플록이 이스트 햄프턴에 있는 집 옆 헛간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업은 급진적으로 변했습니다.
그가 작업실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의 대표작 또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 되었겠죠.
전 이런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 맥스 달튼
이번 전시는 서울의 랜드마크인 63빌딩의 60층에 위치한 63아트 미술관에서 열렸다. 처음 전시장을 올랐을 때 서울 전경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방금까지 두 발로 누비던 여의도가 이렇게나 작아보이다니!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은 맥스달튼의 그림이 닮아있었다. 시끄럽게 지나가던 자동차는 느리게 기어가고, 고개를 꺾어보아야 했던 건물들은 미니어처처럼 작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발밑으로 내려다보니 그 무엇도 별 일 아닌 듯 느껴지기도 했다.
맥스 달튼의 작품 역시 전체를 조망하는 것과 같은 위치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그림의 구조를 보게 되고, 조금 더 다가가보면 그 안에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보인다.
우리는 매 순간을 살면서도 전체 삶의 모습이 어떨지 모른다. 영화를 볼 때도 장면과 장면이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하며 보게된다. 맥스 달튼의 그림을 보면서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또 전체를 관망하면 내 삶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게 될지 생각해본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2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