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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an 21. 2024

남편의 첫 월급

'카톡'


회사에서 일하다가 소리가 나길래 뭘까하고 핸드폰을 보았더니 mi amor(내 사랑) 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사진 한 장이 있어서 열어보니 급여명세서였다.


일십백천만 십만 백만... 꺄아!


우리(한국인) 기준에서 보면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남편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받아온 월급 중에서 가장 큰 금액인 데다, 결혼한 지 6년 차에 접어들어 한 달 동안 온전히 일해서 받은 첫 급여명세서였기에, 들뜬 나머지 얼른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자랑하려고 보낸 것이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혼자 차려먹고 여러모로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한 달 동안 견뎌내고 고군분투하며 만들어낸 결과이니만큼 얼마나 기쁘고 감회가 남다를까!


한국에 와서 생활한 지 일 년이 채 못되던 작년 9월 중순에 친구의 소개로 외국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에 취직이 되어 일을 시작한 남편. 새벽 5시 30분부터 8시간 동안 베이커리의 지하에서 파티시에를 도와서 빵을 반죽하고 만드는 일을 하는 업무였다.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남편은 4시에 일어나 천천히 아침을 챙겨 먹고 커피까지 한 잔 하고는 5시 좀 넘어서 집을 나섰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새벽에 남편은 일어나서 자본주의에서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였다.


덕분에 나의 루틴이 심히 영향을 받아 몇 달 동안 잠을 설치며 힘들어했지만, 사상도 문화도 정반대인 나라에 와서 적응하려는 남편을 생각하면 나의 힘듦을 투정 부리기가 약간은 미안하였기에 내게 맞는 루틴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여 이제는 나도 어느 정도 이 새로운 사이클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 남편의 팀에는 남편 또래의 한국인 남녀 각 한 명과 프랑스 인이 함께 일을 하였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힘들지만 남들이 잠들어있는 새벽에 일어나 빵을 만드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한국인 직원들과의 문화적인 차이였다.


한국인 남자 직원은 시시 때때 소리를 지르고 텃세를 부리며 남편을 힘들게 하였고, 일이 끝나고 다른 팀을 도와주는 걸 여자 직원은 참지 못하고 왜 도와주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남편을 못마땅해하는 걸 남편도, 나도 이해를 할 수는 없었지만, 성격이 급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한국말이 서툰 데다 한국인들처럼 손이 빠르지 않아 일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는 남편이 답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들이 점차 늘어갔고, 외국인 사장님까지 소리를 지르며 남편의 정신세계는 점차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집에 오면 한숨을 쉬며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매일 그만두라고까지 했다. 순수한 남편이 상처를 받아서 힘들어하는 게 안타깝기도 했고, 저러다 병이 나면 내가 더 힘들어질 거니까 미리 막아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자기, 너무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얘기해. 알았지? 나는 자기가 예술을 했으면 좋겠어. 자기는 아티스트야. 이 일 아니어도 할 일은 충분히 있을 테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

"응, 고마워 자기. 그런데 내가 지금 그만두면 다른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지니까 새로운 직원이 들어올 때까지만 할게. 이해해 줘! "


이토록 따뜻하고 어여쁜 남편의 마음을 보고 결혼을 결정했는데, 아직까지 변치 않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며 기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하였다.


계약은 일주일에 4일간 일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가 늘어나 일주일에 5일을 일하게 되었다. 손님이 많은 베이커리라 주말에는 집에 오면 거의 기진맥진할 정도였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참아가면서 남들처럼 일주일에 5일, 하루에 8시간씩 일을 하고 받은 제대로 된 자본주의에서의 첫 월급이었다. 최저시급에 세금까지 감면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한 달에 월급이 3만 원이던 쿠바와 비교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금액이라 남편은 자신이 이렇게 많은 돈을 벌었다는 자체가 몹시 나도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어둠을 가르고 5시 30분에 베이커리에 도착한 남편이 "굿모닝" 하며 인사를 하였는데, 한국인 남자 직원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말도 안 되는 고성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한국인 남자 직원은 전 날 쉬는 날이라 남편과 외국인 사장이랑 둘이서 토요일에 쓸 반죽을 만들고는 사장이 2번 냉장고에 넣어두고 퇴근을 했다. 그런데 남편보다 일찍 출근한 한국인 직원이 1번 냉장고만 열어보고는 반죽이 없자 남편이 반죽을 만들어놓지 않았다고 생각하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코너에 몰아넣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게 폭발하듯 남편도 함께 소리를 지르며 2번 냉장고를 열어서 반죽을 보여주자 한국인 직원은 본인이 오해한 걸 풀었고, 남편은 완전히 질려 버렸다.


그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아침에 일어난 사건을 얘기해 주며 이제는 그만할 거라고 했다. 한동안 한국인 직원들과도 사이좋게 잘 지내며 상황이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폭탄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남편의 의견을 지지했고, 외국인 사장 부부에게 카톡으로 퇴사 소식을 알리는 걸 도와주었다. 이유를 설명하는 게 구차하다고 생각한 남편은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고, 그만두겠다는 소식만 전했다. 곧바로 사장에게서 회신이 왔다. 다른 얘기는 없었고, 계약서에 있는 한 달 노티스 조항을 얘기하며 이렇게 그만두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계약서를 읽어보니 퇴사 한 달 전에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 특약사항에 적혀 있었다. 남편에게 계약서에 특약사항이 있으니 한 달만 더 일하는데, 계약서에 일주일에 4일 동안 일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으니 남은 한 달 동안에는 5일이 아닌 4일만 일하겠다고 하라고 했다.


사장 부부는 CCTV에서 토요일 새벽에 남편과 한국인 직원이 말다툼하는 영상을 확인하였지만, 정확한 내용은 몰랐는데 그동안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일만 하던 순하디 순한 남편이 그만둔다고 하자 사장 부부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까지 놀라서 그 한국인 직원이 다음날부터 왕따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한국인 남자 직원은 미안하다며 다음 날 쿠키 한통을 남편에게 선물하였고, 남편은 그걸 받아서 집에 가져왔다. 그 직원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듯했다. 남편도 나도 그런 그가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같은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일도 열심히 잘하고 청소도 깨끗이 하며 동료들도 잘 도와주어 동료들 사이에서 평이 좋다고 했다. 내가 아는 남편은 한국인들만큼 속도는 빠르지는 않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꾀를 부리지 않고, 정성을 다하며 차분히 잘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빛을 발하는 타입이라 외국인 사장 부분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모두 남편을 좋아하는 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한국인들만큼 속도가 빠른 외국인을 찾는 건 힘들 테다.  


그 한국인 직원은 그 달에 그만두었는데, 그만두는 전날까지도 다른 외국인 동료와 다툼을 했다고 했다. 한국인 남녀 직원이 떠난 자리가 외국인 직원들로 채워지며 지금 남편의 팀은 모두 외국인들인데 쿠바, 러시아, 튀르키에, 미국 이렇게 국적도 다양하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러시아 아주머니는 예전에 이 베이커리에서 일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인지 일 솜씨가 능숙하여, 남편과 러시아 아주머니 둘이서 메인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폭풍우가 떠나가고 평화가 찾아왔다. 환경도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동굴 같은 좁은 지하에서 아마도 오랫동안 일하는 것은 힘들듯 하다. 가끔 동료가 빵을 주면 남편이 집에 가져와서 먹어보았는데, 반죽이 아주 쫄깃쫄깃하며 맛있었다. 남편이 우리 집 옥상을 꾸민 걸 보면 손재주가 꽤나 좋은데, 그래서인지 반죽도 잘하고 빵도 제법 잘 만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최고로 아날로그인, 이메일도 하지 않는 남편이 말도 없이 유튜브 계정을 등록해서 어느 날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고 했다. 남들이 보면 구독은 하지 않을 그저 그런 일반적인 영상이지만 나는 남편이 디지털 세상에 발을 내딛고 시도를 했다는 것에 감격하여 멋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세상, 디지털 세상에서 남편이 돈을 벌고 일을 하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응원할 테지만, 무엇보다 나는 남편이 아프지 말고, 다치치 않고, 원하는 하면서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건, 우리 둘이서 건강하고, 알콩달콩 즐겁고 행복하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순수하고 보석 같은 마음에 금이 가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원하는 예술을 하기를!


첫 월급을 인출해서 증정식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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