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쿠바댁 린다 May 19. 2020

분명 내 남편은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거야

자기, 긴치 없어?

자가격리 55일째, 외국인인 나는 외출을 삼가고 있어 나의 아바타를 자처한 남편이 여기저기에 가서 줄을 서며 힘들게 재료를 구해온다. 그러면 나는 그 귀한 것을 최대한 맛나게 요리해서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소박하게 살고 있는 요즘이다.


요리하다 문득, 내 삶이 남편이 음식을 구해오면 부인이 그걸 요리해서 먹는 원시인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혼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은 적도 있었다.


평소에도 먹을 게 부족한 곳이라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후엔 더더욱 음식 구하기가 힘들어질 거라는 걸 예감한 나는 남편에게 다니다가 먹을 만한  눈에 띄면 무조건   오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나가면 토마토소스, 액상 우유, 식용유, 참치캔 등 먹을만한 게 있으면 하나씩 사 오는데 엊그제는 렌틸콩 한 봉지를 사 왔다. 렌틸콩이 몸에 좋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는데 슈퍼푸드인지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요즘은 고기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채식주의자들이 고기 대용으로 먹을 만큼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하는 이 렌틸콩을 밥에 넣어 밥도 짓고 카레에 넣어 렌틸콩 카레도 했다. 콩을 좋아하는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려고 남편을 불렀다.


“자기, 밥 먹어요!”


“네!” 하며 식탁에 와서 앉더니 렌틸콩 카레밥을 보고는 한국말로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자기, 긴치 없어?”


어려운 단어는 아닌데 남편은 발음이 새어서인지 김치를 ‘긴치’라고 발음한다. 난 이게 은근 귀엽다.


“김치? 조금 있긴 한데 많이 신 것 밖에 없네…”


하고는 2월에 한국에서 오신 분께서 주셨던, 비상시에 먹으려고 꿍쳐 놓았던 ‘볶음 김치’ 한 봉지를 꺼내어 잘랐다. 볶음 김치는 처음 먹어봤을 터인데 한 젓가락 먹더니, “너무 맛있어!” 하고는 결국 카레밥과 함께 볶음 김치 한 봉지를 다 먹었다.


내가 먹은 렌틸콩 카레밥과 신 김치-남편이 먹은 카레밥과 볶음김치




쿠바인들은 단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내 남편도, 시어머니도, 시할머니도, 길거리 아이들도, 박물관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도 모두 까라멜로(사탕)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박물관에 가서 혼자 두리번거리면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오셔서 친절하게 설명을 쬐금 해 주시고는 한결같이 나에게 묻는 말이 , 까라멜로 있어?”였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한국에서 오시는 지인들이 선물로 주는 개별 포장 초콜릿이나 사탕을 가방에 몇 개씩 넣어 다니면서 설명이 끝나면 하나씩 드리곤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거라고 하면 아주 좋아들 하신다. 아주머니들이 K 드라마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도 꽤나 아시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쿠바에 여행 오실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개별포장 사탕은 강추다. 게다가 추파춥스는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남편도 쿠바인이라,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달달구리를 좋아하는데, 그런 남편이 최근 들어 이렇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나 이제 단 거 먹고 나면 매운 게 땡겨. 이제 단 거 많이 못 먹겠어.”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난, “응? 뭐라고? 왜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해?”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그랬더니 남편은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  






6개월 동안 한국에서 나와 함께 살았던 남편은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된장찌개이고 청국장도 바닥까지 긁어서 먹는다. 나야 한국 사람이고 원래부터 된장이랑 청국장을 워낙 좋아해서 바닥까지 긁어먹는다고 해도 매운 거, 냄새나는 거 잘 못 먹는 게 정상(?)인 쿠바인이 너무 맛있다며 싹싹 긁어먹고 후루루 마시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 짓게 된다.


처음에 쿠바에 살러 왔을 때에는 가져올 짐이 너무 많아서 음식이라고는 달랑 작은 통에 든 고춧가루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웃 나라 멕시코에 가서 장을 보기 시작하면서 된장, 간장, 고추장, 멸치액젓, 고춧가루, 새우젓 등 한식 재료들이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천군 만마와 같이 아주 든든한 보물 같은 재료들이다.


한국에서도 주말에 간간히 요리를 하기는 했지만 한식보다는 간단한 다른 나라 음식들이었다. 그런데 이국만리, 먹을 게 귀하고 요리법이 다양하지 않는 나라에 살다 보니 한국음식이 유독 더 많이 먹고 싶어 졌고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늘어가는 내 나이도 한몫했겠지. 20대에 외국살이를 할 때에는 한식을 가끔만 먹어도 괜찮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연결해서 레시피를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시작은 양배추 김치였다. 배추는 당연히 없는  알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 시장에서 배추를 발견했고 배추 세 포기를 샀다. 그리고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서 시키는 대로 겉절이를 담가 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초록색 잎들만 보이면 ‘저걸로는 김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며 김치 만들기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쿠바 김치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이라 여러모로 풋풋한 첫 양배추김치와 첫번째 배추김치



한국에 있을 때에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는 멸치액젓의 매력에 빠져 김치를 하는 날이면 멸치액젓의 향이 온 집에 머금어 남편에게는 힘들 수도 있을 텐데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남편은 그저 창문을 열며 김치가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김치가 완성이 되면, 어릴 적 엄마가 김장이 끝나면 나에게 늘 해 주셨던 것처럼 겉절이 하나를 남편의 입에 하나 넣어준다.


“맛있어 자기?” 하고 물으면 남편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응, 너무너무 맛있어” 하면서 온 몸으로 격한 반응을 해 준다. 사실 예전에 남편은 김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격한 반응은 하루 종일 힘들게 김치를 담고 뿌듯해하는 나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한 배려심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달인가, 내가 먹으려고 김치찌개를 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 나는 남편이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주로 남편이 없을 때 혼자 김치찌개를 해 먹었더랬다. 보통 나는 참치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그 날은 냉동실에 조금 남아 있던 돼지고기를 먹고 없애려고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했었다. 그리고 혹시 남편에게 먹을 건지 물어보았다. 배가 고팠는지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밥을 뜨고 같이 식탁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김치통에 남아 있던 김치 국물을 아낌없이 다 넣었더니 맛은 있는데 간이 센듯했다. 그래서  주로 김치만 건져먹고 국물은 조금만 떠먹고 있었는데 남편을 보니 글쎄 된장찌개처럼 국물을 후루루하며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놀래서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 괜찮아? 안 매워?”

“응, 괜찮아. 아주 맛있어!”


그러더니 짜기도 하고 맵기도 했던 김치찌개를 흔적도 없이 해치워버렸다.



뭐야? 자기 전생에 한국인이었어?
왜 이렇게 잘 먹어? 꼭 한국사람처럼!



이제 남편은 배추김치도 잘 먹지만 오이무침을 특히나 좋아하길래 어제 점심으로 카레와 볶음 김치를 먹고 나서 오후에 남편의 ‘긴치’인 오이무침을 했다. 큰 오이 세 개로 했으니 한동안은 먹을 거 같다. 하지만 요즈음 남편의 김치에 대한 애정 강도로 봐서는 어쩌면 이번 주에 끝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단무지 대신 수박껍질로 만든 피클이랑 시금치 대신 근대나물을 무쳐서 김밥을 해 보았는데 특별히 남편을 위해 오이무침 김밥도 만들었다. 김과 밥 그리고 남은 계란 두 줄과 오이무침 한가득. 역시 잘 먹었다. 조배우 답게 아주 맛나게!(호호)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오이무침을 왕창 넣어서 만든 김밥


이런 남편 덕분에 나도 맘껏 한식을 요리하다 보니 쿠바에 있는 지금,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한식을 더 많이 먹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을 하게 되었다. 특히나 코로나로 집콕인 요즈음은 요리 꿈나무가 제대로 실력 향상을    있는 최적의 기회라 재료가 생기는대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면서 격리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8월에 예정대로 한국에   있으면 아버지 팔순 생신상을  손으로 한번 차려보아야겠다고.


이제 나도 요리를 제법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시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막내딸이 쿠바에서 갈고닦은 한식 요리 솜씨를 한 번 뽐내어 봐야겠다고.


부모님 댁에 가면 늘 나를 VIP 손님처럼 모시고는 손도 까딱 못하게 하신 부모님께 이번에는 내가 엄마, 아빠를 VVIP로 모셔봐야겠다고 말이다.


보조는 당연히 무한 한식 사랑의 주인공인 내 남편이겠지? 먹을 때에는 나보다도 더 한국사람 같은 무늬만 쿠바인인 귀여운 내 서방.


최근에 처음 해 본 근대 참치 쌈밥, 근대 된장 무침 그리고 한식밥상





작가의 이전글 손도 한 번 못 잡아 봤는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