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다에레스 Dec 08. 2022

나는 일 중독자다

모두가 새로움에 설레는 나이인 스무 살. 친구들과는 달리 난 인생의 암흑기라 설레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 엄마의 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엄마의 병은 감당 못 할 병원비를 나 혼자 짊어지게 했다. 그즈음부터였다. 내게 일 중독 증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일주일 병원비는 600만 원. 계속 입원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가지고 있는 보험마저 적용이 안 되는 질병이었다. 20대 초반인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었다. 부모님이 이럴 줄 알고 돈을 모아 두신 건지, 급한 불을 끌 비용은 있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병원비가 지출될지 막막했다.


대학 시절 나는 전공과 연관된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학비는 스스로 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오래였고 아픈 엄마를 혼자 간병하고 병원비를 감당하기는 스무 살에게는 너무 벅찬 상황이었다. 일주일에도 몇 번이고 죽음을 생각했다. 버스가 지나가는 다리가 무너져 내렸으면하고 고향에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수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엄마는 누가 책임지지?’ 내 마음은 죽어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양분되었다.


하루 종일 죽고 싶던 마음을 나는 일로서 풀어나갔다. 친구들이 연애하거나 유학을 준비하며 꿈에 부풀어 있던 20대 시절. 엄마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던 나는 가고 싶던 미국 유학도 포기했다. 유학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엄마의 병원비가 문제였다. 고시원에 살면서 학업과 전공 일,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엄마를 돌봤다. 1년 동안 7일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이십 대에 많이 놀아보라는데, 나는 삶이 너무 무거워서 놀지 못하고 일과 가정에 매여 있었다.


어린 시절 보고 자란 그대로 닮는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90년대 흔하지 않게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아래 외동으로 자란 나. 만삭일 때에도 피아노 학원 운영을 계속하셨던 엄마. 어린 시절 친구의 엄마는 가정주부였던 것에 비해, 엄마는 항상 일하고 있었다. 일하면서 집안일을 비롯한 가사노동을 전부 부담했다. 아빠도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 수주를 따낼 정도의 큰 사업을 하셨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항상 일하느라 바쁘셔서 어디 놀러 간 적도 별로 없는 어린 시절. 어른이 되면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였고, 부모님 모두 가족의 도움 없이 단칸방에서 시작하셨던 가정이라 여유를 몰랐다.


14살 즈음, 아빠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부모님은 사업을 정리하고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셨다. 사춘기가 온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모님과 지내며 마음의 문을 닫았다. 아빠는 7개월간의 투병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엄마는 나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쉼 없이 일하셨다. 사춘기였던 나는 엄마가 일하시는 것에 대해서 전혀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다.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십 대 중후반까지 나는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을 못 하고, 아르바이트만 했다. 이십 대 중반 꿈을 포기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엄마의 병원에서 보호자를 부르는 일이 많았고,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하는 부분이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이는 먹어 가는데 애매한 커리어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던 내 인생이 30대가 되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지만, 남들보다 몇 년이나 뒤처져있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질보다는 양이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시도해 보는 것.


20대 내내 엄마의 그늘에 가려져 보호자로만 살아왔던 우울했던 내 인생이, 30대에 내가 일을 열심히 할수록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이런 모습이 나라는 걸 인식하게 해주었다. 일할 때야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나. 아직도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병원비를 감당하고 있는 처지라서 돈을 벌어야 하는 나. 그리고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필요한 구성원이라는 걸 느낄 수 있기에,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는 일 중독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