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아이들 앞에서, 판사 대신 코치되기

형제/자매 갈등 속 부모의 역할

by 꿈꾸는자

기질과 성격, 취향까지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은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평화롭던 거실이 어느 순간 전쟁터로 바뀌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부모로서 느끼는 당혹감은 꽤 크다. 혹여나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부터 갈등 해결을 지혜롭게 돕지 못해 이 문제가 지속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감정적인 대응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객관적인 정보를 따라가 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공정함(Fairness)의 재정의 : '똑같이'가 아니라 '특별하게'


"It’s not fair!"

주변 부모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각 가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아이들 사이의 갈등 속에서 자신이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자주 토로한다. 우리는 흔히 공정함을 '모든 것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진정한 공정함은 각 아이의 발달 단계와 기질에 맞춘 차등적 대우에 있다.


예를 들어,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에게는 특별한 간식과 함께 단독으로 대화할 시간을 주고, 활동량이 많은 아이에게는 그만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놀이를 제안하는 식이다. "우리는 모두 똑같아"가 아니라 각 아이의 필요에 반응하며 "너는 너라서 특별해"라는 개별적 인정을 경험하게 할 때, 아이들은 비로소 형제를 내 몫을 뺏어가는 경쟁자가 아닌 각자의 삶을 사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공정함을 지키려 애써도 아이는 여전히 차별을 느낄 수 있다. 오은영 박사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무의식적 차별'을 경고한다. 부모가 기질적으로 순하고 말이 잘 통하는 자녀를 볼 때 짓는 편안한 미소(안도감)와,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자녀를 볼 때 짓는 긴장된 미간의 차이를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감지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똑같이 사랑한다"라고 항변하지만, 아이에게 부모의 그 미세한 온도 차는 명백한 차별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부모가 많은 사랑을 쏟아도 아이가 불공정함을 호소한다면, 논리의 잣대로 부모가 얼마나 공정했는지 사실관계(Fact)를 설명하려 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은영 박사의 조언처럼, 아이가 느끼는 그 감정 자체가 아이에게는 '주관적 진실(Subjective Truth)'임을 인정해야 한다.


"네 눈에는 엄마가 동생을 더 편안해하는 것처럼 보였구나. 네 마음이 서운했다면 그게 맞는 거야. 몰라줘서 미안해."


당장이라도 아이의 오해를 바로잡고 상황을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그 순간에도 '정서적 수용'이 먼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는 내 마음이 온전히 받아들여졌다고 느낄 때 비로소 뾰족한 방어 기제를 거두고 부모의 사랑을 다시 신뢰하기 때문이다.


판사가 아닌 코치가 되는 법

우리 집에서 아이들의 다툼이 있으면 종종 우스갯소리로 "엄마 판사님(Judge)에게 물어보자"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Gottman Institute의 Kendra Han은 갈등 상황에서 부모가 '판사'가 되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가 먼저 시작했어?"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한 명을 '가해자'로, 다른 한 명을 '피해자'로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기질적으로 순하거나 약한 아이가 늘 피해자가 되고, 표현이 거칠거나 감정이 격한 아이가 늘 가해자로 낙인찍히는 상황은 위험하다. 물론 부모 눈에는 가볍게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을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 폭력으로 키우는 아이의 잘못이 훨씬 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가 악해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아직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미숙함'의 문제다.

이러한 낙인찍기는 가정 내에서의 역할을 넘어 학교나 사회에서도 아이의 자아 정체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대신 부모는 '감정 코칭(Emotion Coaching)'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아이의 속상한 감정 자체는 인정해주되, 타인을 공격하는 행동에는 단호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행동에 대한 지적보다 그 행동을 하게 된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과정은, 아이들이 자신의 넘치는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핵심적인 훈련이 된다.


개입의 수위를 조절하는 지혜

Child Mind Institute의 글에서는 부모가 갈등의 심각성에 따라 마치 물의 온도를 조절하듯 개입의 수위를 달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이들이 그저 사소하게 투닥거리는 수준이라면, 부모가 즉각 '해결사'로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부모가 갈등의 ‘관객’이 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에 일일이 반응하면 아이들은 부정적인 행동을 통해 부모의 관심을 얻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한 발짝 물러나 ‘적극적 무시(Active Ignoring)’를 실천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자율성을 허락해야 한다고 한다. 갈등 상황 그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다툼을 지켜보며 개입을 참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숙제일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해결사'의 역할을 내려놓고 기다려 주는 것 또한 중요한 교육적 개입이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불편하겠지만, 아이들을 믿고 한 발 뒤에서 기다려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목소리가 통제할 수 없이 높아지거나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때는 즉시 개입하여 아이들을 분리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뇌과학자 댄 시겔(Dan Siegel) 박사는 이때 흥분한 아이의 뇌 상태를 ‘반응성(Reactive)’ 상태, 즉 ‘생존 모드’라고 정의한다. 시겔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뚜껑이 열린’ 상태로, 이성과 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위층과 감정을 담당하는 아래층의 연결이 끊어진 위기 상황이다.


아이는 지금 상황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본능적으로 싸우거나 도망치려 하기 때문에, 이때 부모가 “누가 먼저 그랬어!”, “싸우면 안 된다고 했지!”라며 논리적으로 훈육하려 드는 것은 닫힌 문에 대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아이의 뇌는 부모의 옳은 말조차 또 다른 공격으로 받아들여 더 격렬하게 저항할 뿐이다.


훈육은 아이의 뇌가 ‘수용성(Receptive)’ 상태로 돌아왔을 때만 가능하다. 이것은 아이가 안전함을 느끼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된 ‘학습 모드’다. 반응성 상태인 아이를 수용성 상태로 옮겨오기 위해 필요한 열쇠는 논리가 아니라 ‘연결(Connection)’이다.


성급하게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혼내기보다 감정을 읽어주는 순간, 아이의 뇌는 ‘아, 나는 공격받는 게 아니라 이해받고 있구나’라고 느끼며 비상경보를 끈다. 먼저 아이와 정서적으로 연결하고, 그 뒤에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Redirect) 것. 문이 열리기도 전에 억지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안전한 기지가 되어 기다려주는 인내심이야말로 갈등 중재의 핵심 기술로 언급한다.


평화롭다 싶으면 느닷없이 찾아오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다툼. 하지만 그 소란함이 결국은 아이들이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바로 세워가는 소중한 성장의 과정이 되기를, 오늘도 '우리 집'이라는 가장 생생한 배움터에서 바라고 또 바란다.



참고자료


The Gottman Institute: Help Your Kids Get Along: The Importance of Sibling Relationships (2025)

https://www.gottman.com/blog/help-your-kids-get-along-the-importance-of-sibling-relationships/


Child Mind Institute: When Siblings Won't Stop Fighting (2025)

https://childmind.org/article/when-siblings-wont-stop-fighting/


오은영 박사: 요즘 가족 금쪽 수업 1회(21.05.08), 금쪽같은 내새끼 1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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