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참 묘한 사이야. 가깝지만, 너무 가까워선 안 되는.”
작가(창작자)는 노트북을 덮으며 조용히 말했다.
책상 앞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작권은 창가에 앉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존재는 언제나 그렇다. 가까이 있지만 멀고, 늘 곁에 있으면서도 쉽게 지나치는 존재.
“넌 사랑 같아.”
“사랑?” 저작권이 고개를 돌렸다.
“응. 사랑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잖아. 너무 밀착하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마음이 식어.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존중할 때 비로소 사랑이 되는 거지. 너도 그래. 네가 없으면 무서울 만큼 허전한데, 네가 너무 강하게 들어오면 답답해져.”
작가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며칠째 떠오르지 않는 문장을 붙잡고 있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를 때마다 머릿속을 맴도는 건 불안이었다.
이 문장이 과연 내 것인가. 누군가의 글에서 무의식적으로 가져온 건 아닐까. 예전엔 이런 고민 없이 썼는데, 지금은 쉽게 흉내 내지도, 베끼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창작자로서의 책임이기도 하니까.
“사람들은 널 좀 어려워해.” 작가가 말했다.
“너무 복잡하고, 제한적이고, 창작의 자유를 막는다고 생각하거든.”
“나를 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나는 권리야. 그리고 동시에 보호야. 나는 네가 만든 것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
저작권은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희미하게 불이 켜진 창문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노래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사진을 정리하고 있겠지. 그리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누군가의 것을 베끼고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창작할 수 있는 시대니까, 모두가 지켜야 할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작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알아. 창작은 결국 책임이기도 하다는 걸. 내 글이 누군가에게 무게가 있듯, 다른 이의 문장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담겨 있다는 걸, 예전엔 나도 네가 좀 답답했어. 쓰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혹시 이게 누군가의 것일까’ 의심해야 하는 게, 창작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그건 창작이 익숙하지 않아서야.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나를 배려하게 돼. 사람들은 나를 법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난 관계에 가까워. 너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자, 네 마음을 세상으로 옮기는 울타리. ”
“사랑도 그런 거지.” 작가는 조용히 웃었다.
“사랑은 자유롭지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감정이야. 서로를 지켜주고, 물어보고, 허락하는 거. 그건 창작도 똑같아.”
저작권은 작가의 머리맡에 놓인 책 한 권을 가리켰다. 거기엔 어떤 문장이 밑줄 쳐져 있었다.
작가는 무심코 그 문장을 작품에 쓰고 싶어 했지만,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문장을 내 작품에 넣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해?” 작가가 물었다.
“방법은 단순해. 인용이 허용되는 범위인지 확인하고, 그 범위를 넘는다면 허락을 구해야 해. 출처를 밝히고, 맥락을 왜곡하지 않아야 해. 간단한 규칙이지만, 많은 이들이 지키지 않아.”
“그럼 너는 언제 화가 나?”
“화가 나는 게 아니야. 다만 속상하지. 네가 오랜 시간 고심해서 만든 문장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가져간다면, 그건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훔침이야. 그리고 슬프게도, 그런 일이 아직도 많아.”
작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신도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무심코 자신의 글에 넣었고,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았을 때 당황하고, 부끄럽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창작은 결국 타인의 시간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작가가 말했다.
“사람들은 널 법이나 조항으로만 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넌 나의 울타리야. 내가 만든 것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람.”
“나도 너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어. 벽이 아니라, 울타리. 막는 게 아니라 보호하는 존재. 그리고 너의 자유를 해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해주는 질서로 남고 싶어.”
“사랑이 그렇지.”
작가는 조용히 웃었다.
“진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니까.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지키는 거.”
저작권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창작자들이 그를 인식하든, 하지 않든.
다만 누군가가 그를 사랑처럼 다뤄줄 때, 그는 그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느낀다.
그날 밤, 작가는 작업 파일을 하나 저장했다.
제목은 ‘너와 나 사이’.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제 너를 지운 적 없는 연인처럼 여긴다.
사랑하니까, 지켜야 하는 거다.
저작권처럼. 당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