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적 없던 동거

by 린다

5년 전, 나는 지독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살고 있던 빌라에 어느 순간부터 바선생이 나타나 평화로웠던 내 일상을 마음대로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널찍한 투룸에 해도 잘 들어오는데 심지어 월세도 저렴했던 그 집에서 나는 꽤 오래 살았고, 앞으로도 별일이 없다면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이 상습적으로 식구를 끌고 들어오기 시작한 적은 없었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곧장 약국에 가서 온갖 종류의 살충제를 사고 인터넷에 박멸법을 검색하며 바선생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화성에서도 살아남는다는 그들의 생존력은 한낱 인간일 뿐인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동거인.. 아니 동거충(?)들의 등장에 정신없이 뚝딱거리다가 가만히 그들의 출몰구역과 동선을 유심히 살펴보니 어렴풋하게 그들의 등장 경로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바선생들이 출몰하는 구역은 대체적으로 주방 싱크대와 현관문 쪽이었는데, 현관문과 싱크대는 일직선상에 있었고, 그 일직선은 옆집과 면해 있었으며, 옆집 역시 벽 하나를 두고 우리 집과 싱크대를 마주하고 있는 구조였다. 한마디로 우리 집 싱크대관과 옆집 싱크대관이 이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옆집에는 4인가족과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고, 반면 나는 혼자 자취 중이었다. 집에서 뭘 잘 해먹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혹시 옆집에서 쓰레기나 다른 위생 관련한 문제가 있어서 바선생들이 넘어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옆집과 관련해서 신경 쓰였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종종 지독한 냄새가 나는 쓰레기봉투를 현관문 앞에 내놓고 버리지 않고 있던 것, 옆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현관문이 열리면 호다닥 나왔다가 복도 한가운데에 응가를 해놨던 것, 그 응가가 며칠째 치워지지 않았던 기억 같은 것들이었다. 건물 주인아주머니께 전화해서 어느 날 갑자기 바선생이 미친 듯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해도 ‘아마 옆집이 집을 지저분하게 쓰는 것 같다’라고만 말씀하실 뿐 그 어떤 조치도 취해주지 않으셨다. 건물을 관리하는 사무소에 종종 방역을 요청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옆집이 굉장히 소란스러워 나가 보니 이삿짐이 나오고 있었다. 언뜻 들은 이야기로 옆집은 그동안 분양받은 새 아파트가 지어지기를 기다리며 빌라에 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간단하게 이사를 축하드린다는 말을 건네고 문이 열린 옆집의 내부를 슬쩍 들여다본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다양한 크기의 바선생들이 어떤 개체는 죽은 채로, 또 다른 개체는 버둥거리는 채로, 일부는 여전히 팔팔하게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쪼그맣고 털이 긴 옆집의 강아지가 나를 보고 사납게 캉캉 짖고 있었지만 충격으로 멍해진 머리가 그 소리를 아득하게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참혹한 현장을 뒤로하고 출근을 했지만, 일하는 내내 아침에 본 옆집 내부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옆집이 나갔으니 아무래도 바선생과의 사이는 좀 더 멀어지지 않으려나 내심 기대도 됐다. 불과 몇 시간 뒤 퇴근하고 마주할 모습은 전혀 상상도 못 하고 말이다.


퇴근 후 빌라 복도에 진입하자마자 매캐한 연기냄새가 났다. 내가 일하는 동안 빌라에 불이 났었나? 혹시 우리 집에서 불이 났나? 그랬다면 나한테 연락이 왔을 텐데? 이런저런 불길한 마음을 안고 2층으로 올라가 마주한 가장 첫 번째 모습은 아침에 이사 나간 옆집의 현관문이 청테이프로 밀봉(?)되어 있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더욱 짙어진 연기냄새... 아.. 이것은.. 바선생 퇴치를 위한 연막탄 냄새일까... 그럼... 우리 집은...?

부랴부랴 현관문을 열고 집안의 불을 켜자 부산스럽게 몸을 감추는 움직임을 느꼈다. 하지만 미처 몸을 감추지 못한 바선생들과 마주했고, 나는 그날 저녁 엄청난 양의 바선생들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그것도 엉엉 울면서...

사건의 전말은 주인아주머니가 옆집이 나가자 문을 모두 닫고 바선생 퇴치를 위한 연막탄을 쏘셨는데, 난리통에 당황한 그들이 싱크대로 연결된 관을 타고 모조리 우리 집으로 피난을 왔던 것이었다. 주인아주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잠도 잘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다고, 이렇게는 못살겠다며 엉엉 울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주인아주머니는 평온한 목소리로 이제 점점 바선생들은 안 나올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말했고, 실제로 며칠 동안 미친 듯이 우리 집으로 피난을 오던 그들은 점점 그 수가 줄어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 찬장이나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꺼내다가 죽은 채 발견된 그들의 시체를 보며 나는 이제 이 집과의 인연이 다 했다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언젠가부터 집이 굉장히 어두워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빌라 맞은편 건물이 허물어지고 기존보다 더 큰 건물로 지어지면서 하루 종일 거실로 쨍하게 들어오던 햇볕을 완벽하게 가린 탓이었다. 컴컴한 집에서 바선생들의 시체나 치우며 내 여가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내가 직접 부동산을 들락거리며 고른 집,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난생처음 확정일자라는 것을 받아보는 경험을 준 집, 회사원 시절과 퇴사자 시절과 바리스타라는 새 직업을 모두 거쳐온 집, 진했지만 지난했던 연애를 했던 집, 그리고 삼십 대를 맞이한 집이기도 했던 그 빌라와는 그렇게 바선생의 침범을 계기로 이별을 했다. 평생 그 집에서 살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적어도 집을 나오게 되는 계기가 이런 것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아주 예기치 못한 이별이었다.

어차피 이사를 마음먹은 김에 그만 월세를 탈출해 보자는 생각으로 전셋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전세금에 고개를 저으며 몇몇 새 보금자리 후보들을 제외하다 보니 어차피 받을 대출이라면 그냥 자가주택보유자가 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작고 낡은 아파트를 구매했다. 그리고 그 작고 낡은 아파트는 5년째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매달 나가는 대출금에 허덕일 때면 내가 저렴한 월세집에서 두 배가량 비싼 월세집으로 옮겨온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집을 샀나 싶기도 하지만, 확실히 월세나 전세금이 오르진 않을까 걱정하거나 조만간 이사를 해야 한다는 초조함은 없어서 좋다. 아파트가 낡아서 화장실 수전에서 물이 샐 때도 많고, 구석구석 고치고 손봐야 할 곳이 많아서 처음에는 습관처럼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생각하다가 ‘아 맞다. 내가 주인아주머니지.’ 깨닫고는 혼자 피식 웃어버린 적도 있다. 집주인이 되고 나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꽤 있지만 그래도 어엿한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할 때가 더 많다. 물론 대출금은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어쩌면 나를 자가주택보유자로 만들어준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그때 그 빌라에 출몰했던 바선생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바선생답게 사는 동안 나는 굉장히도 비인간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한다. 인생의 어떤 모습이 변하는 시점에는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운명적인 계기가 등장하진 않는다는 것. 오히려 아주 작은 우연 같기도 하고, 약간은 껄끄럽기도 한 일, 어쩌면 악재가 아닐까 싶기도 한 일들을 시작으로 삶의 모습이 한순간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도 잔잔한 내 일상에 가끔 따가운 파도가 밀려올 때면 차분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이 파도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파도가 잔잔해졌을 때 눈을 뜨면 내 앞에는 어떤 삶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지 말이다. 사실 밀려온 파도에 처음부터 차분히 눈을 감고 생각하기보단 미약한 악재에도 당황해서 우당탕탕 하거나 좌절하는 마음이 더 빨리 다가와 내 속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곤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어엿한 자가주택보유자이고, 외면할 수 없는 어른이니까 어떻게든 마음속 파도를 다스려보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는 바선생과 만나고 싶지 않아서 이사를 한 후로 한동안은 집청소에 굉장히 몰두하다가 지금은 청소와 약간의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맥시멀리스트의 집은 청소와 관계없이 지저분해 보인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활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는 제때 버리고 있고, 설거지거리도 생기자마자 바로바로 해치우는 편이다. 무엇보다 내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아파트에서 주기적으로 방역을 해주기 때문에 그때처럼 원치 않는 동거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갖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요즘처럼 날씨가 ‘따뜻’에서 ‘후끈’으로 옮겨가는 계절이면 이름을 모르는 곤충들이 깜짝 등장하긴 하지만, 그들도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어엿한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참을만하다. 다만, 바선생만 아니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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