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을 하는 틈틈이 부업을 하고, 본업이 쉬는 날엔 주로 부업을 하다 보니 사실상 쉬는 날이 따로 없이 지낸 지도 꽤 되었다. 하필이면 부업이나 사이드프로젝트에 대한 결심을 늘그막(?)에 하는 바람에 체력이슈로 인한 휘청거림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내가 이걸 20대에 시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20대의 나라면 부업이나 사이드프로젝트는 해볼 생각조차 안 했을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직업적인 성취나 자기계발보다는 친구들과 놀고먹고 하는 삶이 더 중요했었으니까. 그리고 나름 취업에 성공한 어엿한 회사원으로서의 자아가 굉장히 충만했었으니 말이다. 물론 몇 년 못 가서 그 자아는 와르르 무너졌지만.
취업을 하고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어렵다고들 말한다. 일단 회사에서 비슷한 나이또래의 동료를 만나는 것부터가 어렵고,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친밀함을 나누기보단 경쟁관계에 가깝기 때문에 겉으로는 상당히 친밀해 보여도 사실 속으로는 회사 내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 언제든 져버릴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상당히 운이 좋았다. 직장운은 별로 없었지만, 대신 동료운이 좋았다고 할까? 물론 당연히 직장 내에서 나를 괴롭히거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 못지않게 우정을 나누고 퇴사한 이후에도 꾸준히 만나는 친구들이 생겼으니 말이다. 일하기 힘든 조직 시스템과 오너의 폭력성과 갑질, 수준 낮은 처우 속에서 한 시절을 함께 견뎌온, 어쩌면 우정보다는 ‘전우애’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우리들은 퇴근 후 밤새 술잔을 기울이면서 회사생활의 힘든 부분들을 나누기도 하고, 각자의 연애사정이나 시시콜콜한 농담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함께 긴 밤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고도 아침이면 용케도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회사에서 만났다. 그때는 그럴만한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되었기에 우리들의 관계는 마주 앉아 보낸 시간과 누적된 술병들의 힘으로 쌓아 올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각자 결혼을 하거나 이직을 이유로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서 예전처럼 자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시간을 맞춰 만나곤 한다. 그때마다 마치 어제도 만났던 것처럼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쌓아뒀던 시간들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우리도 나이를 먹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 시절처럼 밤새 술을 마실 수도 없거니와 조금이라도 술을 마시기로 했다면 다음날은 반드시 일정을 모두 비워놓아야만 일상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모두 뼈에 새기며 만나고 있다. 조금은 슬프기도 한데, 또 어느새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이렇게나 깊어졌구나 생각하면 새삼 뭉클해지기도 한다.
지금 내 나이에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이미 갖고 있던 인간관계들도 나이가 들수록 하나둘 정리되기 마련인데, 새로운 친구라니.. 사실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때처럼 밤새 술잔을 기울여가며 친분을 쌓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내 일상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일상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함부로 침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아, 물론 밤새 술잔을 기울일 체력과 열정이 이젠 고갈되어 있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겠지만. 그래서 요즘은 함께하는 시간의 양으로 친밀함을 쌓아가는 관계보다는 잠깐씩 짬을 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 ‘통한다’라는 느낌이 드는 관계가 좋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런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마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잠깐 만나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줘’라고 생각할 만한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듣다가 내가 생각했던 이런 관계에 대해 말하는 방송을 듣게 되었다. 씨네 21 이다혜 기자님과 천선란 작가님이 나누는 이야기였는데, 이런 관계에 대해 ‘밀도 있는 인간관계’라고 언급하며, 요즘엔 이런 관계가 참 좋고, 기자님과 작가님도 이런 관계에 가깝다는 이야기였다. 밤새 쌓는 우정이라기보다는 체력이나 시간적인 이슈로 짧은 시간 동안 만나 마음을 쌓는 관계라는 것이다. 친분을 쌓기 위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억지로 시간을 내서 만남을 가지기보다는 서로가 컨디션이 좋고,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시간에 짬을 내서 밀도 있는 관계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치 내 마음속에서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하고 뿌옇게 떠돌던 생각을 두 사람이 아주 또렷하고 명료한 단어와 문장으로 짚어내준 것 같은, 아주 속이 다 시원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개개인마다 성향이 다르고 친밀함을 느끼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마치 운명처럼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부럽다고도 느껴졌다.
지금 내 삶에서 그처럼 ‘밀도 있는 인간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뚜렷한 사람이 있을까? 애초에 서로의 사정으로 만남을 갖지 못해 이제는 연락을 하기조차 애매해져 버린 친구들도 있고, 가끔 만나면 부동산 이야기나 아이들의 교육과 학군 이야기들로 모든 대화가 채워지는 관계도 있다. 물론 오랜만의 만남 자체가 기쁘고 설레는 일이지만 ‘마음이 채워지는’ 시간을 보냈다기보다는 정보공유의 느낌이 더 강하다고나 할까.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오늘의 대화를 곱씹으며 즐거워하기보다는 가벼운 피로감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던 차에 아는 사람의 권유로 몇 년 전부터 친목 모임도 시작해 봤다. 하지만 회원들 중 내가 나이가 가장 많은 탓일까, 모임을 하면 주로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내게 연륜이 느껴지는 조언이나 격려를 바라지, 정작 내 고민엔 그만한 관심도 공감도 없는 눈치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는 고민이 딱히 없다는 말로 넘기거나 내 고민들과 생각들 중 가장 가볍고 다른 회원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찾아 살짝 꺼내 보이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나는 이런 일들에 서운함을 크게 느끼는 편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오히려 이해가 된달까. 내가 20대였을 때도 곧 사십 대를 마주할 나이 든 언니의 고민엔 크게 공감을 못했을 테고, 아마 관심조차 없었을 것 같으니까. (별생각 없었는데 오히려 글로 쓰다 보니 서러워질 것 같은데.. 기분 탓일 거야...)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알고 지내온 시간과 관계없이 내게도 ‘밀도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 것 같다. 맛있는 게 생기면 우리 집 문 앞에 걸어두고 가는 M, 바쁜 일정 중에서도 어떻게든 밥 한번 같이 먹기 위해 스케줄을 이리저리 궁리해 보는 S가 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가끔은 엄마보다 더 많은 응원을 건네는 동그라미같은 친구가 있다. 더불어 나도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고민 많고 걱정 많은 일상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내 마음을 채워주는 고맙고 소중한 이들에게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기를. 그들이 나를 만나 대화하는 잠깐의 시간만큼은 고민을 내려놓고 마음의 온기를 충전할 수 있기를 말이다. 나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