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우리 삼남매 중 하나를 부르기 위해 세명의 이름을 다 부르곤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나를 부르려면 일단 막냇동생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가 ‘아니지 아니지’ 하고는 곧이어 둘째 동생의 이름을 부르고, 또다시 ‘아니다 아니다’하고 나서야 내 이름을 부르는 식이다. 그럴 때면 장난 섞인 말투로 엄마는 큰딸 이름도 모르냐며, 내 이름보다 동생들 이름이 더 먼저 생각났느냐며, 나에 대한 사랑이 그 정도냐며 툴툴거렸고, 그러면 엄마는 홍홍홍 웃으며 ‘너도 애 셋 낳고 나이 들어봐라’라는 말로 응수하는 것이다. 엄마 말 데로 나이가 하나둘 채워질수록 반대로 내 기억력은 하나둘 떨어지는 느낌이긴 하다. 친구들과 대화 중에도 어떤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서로서로 도와가며 스무고개를 해야만 간신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엄마 말처럼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그런 버퍼링이 조금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일하는 카페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선호하는 힙하고 핫한 느낌의 공간은 아니고, 주 고객층이 주로 40~60대 여성이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우리 엄마처럼 귀여운 말실수를 하시는 분들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뜨겁게 달라고 하시는 경우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메리카노의 아이스버전이라고 생각하기보단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런 경우 대부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의도하고 주문하시는 경우지만, 혹시 모르니 한번 더 메뉴확인을 해야 한다.
“아이스아메리카노 따뜻하게 주세요.”
“아이스로 드릴까요,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그러면 손님의 두 눈에는 물음표가 뜬다. 분명히 따뜻한 거라고 말한 거 같은데, 왜 또 묻는 거냐는 의문이다. 그리고는 금세 자신의 말실수를 알아차리곤 손뼉을 치며 홍홍홍 웃고, ‘아유 내 정신 좀 봐야’하고 얼굴을 붉힌다. 옆에 같이 있던 친구 아주머니도 ‘어머 얘~ 너 왜 그러니 정마알~’하며 친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으시는데, 재밌는 것은 그분 역시 방금 전 친구분의 주문에서 이상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셨었다는 것이다. 그 나이대 여성분들은 아주 무더운 한여름이 아니고는 대부분 따뜻한 커피를 드시기 때문에 날씨가 꽤 쌀쌀한 날에 손을 호호 불면서 들어오셨는데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시면 눈치껏 메뉴확인을 해봐야 한다. 그러면 또 대부분 아이스가 아니라 따뜻한 게 맞다고 하시거나, 어쩌다 메뉴확인을 못하고 아이스로 서빙을 하게 되면 ‘아 내가 또 헷갈려서 잘못말했구나’라고 생각하시고는 ‘어머! 제가 아이스를 주문했나요? 이걸 어째. 따뜻한 걸 주문한다는 게 아이스를 해버렸네..’하고는 머쓱해하신다. 그럼 나도 웃으며 괜찮다고 다시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고, 아이스는 내가 시원하게 마신다.
예전에는 손님들이 이렇게 메뉴를 잘못말해서 주문이 늦어지면 사실 좀 짜증이 났었다. 메뉴를 주문하시는 손님들의 줄은 너무 길었고, 바는 너무나 분주했고, 나는 이거 말고도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았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한가로이 커피를 주문하면서 홍홍홍 웃는 손님들이 왠지 얄미웠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가도 손님이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나이가 들어서 자꾸 이러네.’라고 하면, 속으로나마 툴툴거린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그랬다. 내 이름 하나 부르기 위해 동생들의 이름까지 다 불러야 하는 우리 엄마도 어느 카페에 들어가 주문을 할 때면 이 손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텐데.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의 모난 부분을 조금씩 깎아내며 나이를 먹었다. 자꾸만 깜빡하는 어머니 손님들은 우리 엄마 같겠거니 생각하고, 자신은 절대 틀리지 않았고 무조건 직원이 잘못한 거라고 빡빡 우기는 젊은 꼰대 손님들은 왕싸가지 내 동생 같겠거니 생각하니 한결 귀엽게 느껴졌다. 나 좀 성숙한 듯.
얼마 전에 읽었던 윤가은 감독의 에세이 ‘호호호’에도 이런 말실수에 대한 글이 있어서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중 어린이들이 새로 익힌 단어를 열심히 외워놓고 그 단어를 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의기양양하게 잘못말하는 사례들은 정말 귀엽다.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우연히 내 일기장을 펼쳐 읽어보다가 배꼽이 빠질 것처럼 빵 터져서는 눈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웃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게 ‘누가 일기장에 이런 단어를 쓰느냐’며 ‘이거 선생님도 보시는 일기 아니냐’며 연신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대체 내가 무슨 단어를 썼길래 엄마가 저렇게 웃지? 일기장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가족과 아빠 친구분네 가족이 함께 주말에 가벼운 등산을 갔었는데, 겨울이라 등산로가 빙판이 되어있었다. 나는 겁이 많아서 한발 떼기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아저씨네 두 아들들은 그 미끄러운 빙판을 깔깔 웃으며 스케이트를 타듯 미끄러져 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일기장에 그 장면을 묘사하면서 ‘맙소사! 오 마이갓!’이라고 또박또박 써놓았던 것이다. 엄마의 눈에 아직 꼬꼬마 초딩 딸내미가 어디서 오 마이갓 같은 단어를 알고 일기장에 썼을까 생각하니 그렇게도 웃겼나 보다. 또 한 번은 엄마가 내게 ‘아빠한테 퇴근길에 형광등을 사 오라고 린다가 전화해 봐’ 하고는 아빠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다. ‘전화했는데 아빠가 안 받으면 어떻게 해?’라고 하니, ‘그럼 우리 아빠 좀 바꿔주세요. 우리 아빠 이름은 ㅇㅇㅇ이에요. 하면 돼.’라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아빠 사무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역시나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언젠가 엄마가 아빠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어른이라도 된냥 목소리를 깔고 ‘안녕하세요? ㅇㅇㅇ씨 계세요? 좀 바꿔주시겠어요?’라고 했다. 엄마는 그때도 배꼽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던 것 같다. 나도 아직 때 묻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종종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들을 곧잘 흉내내기도 하고, 배운 말을 어떻게든 써먹고 싶었던 아이였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귀여운 기억들이다.
인간의 기억력이 가장 좋고 총명함이 최고인 20대 시절, 나는 종종 깜빡깜빡하고 말실수가 잦은 어른들을 보면서 답답해했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말하면 저런 실수는 안 할 텐데, 하면서 그때 내가 갖고 있던 총명함이 영원할 것처럼 굴었다. 불과 십 년도 안돼서 단어가 생각 안 나 스무고개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말실수는 귀엽고, 배우는 과정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왜 어른들의 말실수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까? 우리는 언제나 배우며 나이 먹는 어쩌면 영원한 어린이 일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손님이 잘못 말하면 다시 되물어볼 줄 알고, 친구들과 대화 중 스무고개를 해야 하는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 그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동안 알게 된 이런 작은 지혜들이 내 안에 쌓였기 때문에 더 이상 20대 시절이 그립거나 어떻게든 돌아가고 싶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딱 하나 후회되는 것은 이런 작은 말실수들을 그동안 기록해두지 않은 것이다. 커피를 마시다가, 밥을 먹다가, 세수를 하다가도 종종 떠올라 혼자서 깔깔 웃을 때가 있으니 어딘가에 잘 적어두었더라면 우울할 때마다 꺼내 읽어보는 나만의 웃음버튼 유머집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예전에 내가 타고 다니던 낡은 자동차가 꽤 많은 문제를 일으키던 즈음, 이제 그만 차를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같이 일을 하던 동생은 갑자기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내게 신형 모닝의 견적을 내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마치 자동차 딜러라도 된 것처럼 자동차의 이런저런 사양들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실장님! 이 차에는 루프탑도 있어요! 짱이죠?”
“... 루프탑? 거기서 커피마실 수 있는 거니..?”
선루프를 루프탑으로 잘못말하고 그게 너무 웃겨서 둘이서 한참을 붙들고 웃었던 그 상황을 나는 아직도 운전 중에 선루프를 열고 달리는 차를 볼 때마다 생각나서 핸들을 붙잡고 깔깔 웃곤 한다. 그것 말고도 그 동생에겐 말실수로 인한 에피소드가 한 보따리인데 따로 기록해두지 못한 게 정말 천추의 한이다. 이렇게 배꼽을 잡고 웃게 하는 말실수들은 지금은 그저 재미있는 기억으로만 남겠지만, 언젠가 진짜 현실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생각도 못했던 ‘아이스크림 튀김’ 같은 메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로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개발되어서 자동차 꼭대기에 루프탑 카페처럼 앉아 여유롭게 마셔보는 날이 오게 될지도. 때로는 엄청난 발견이 사소한 아무 말에서 시작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