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손발이 너무 시린 계절이라는 것이다. 나는 손발이 찬 편인 데다가 쉽게 건조해지곤 하는데, 손이 건조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언제나 내 가방에 핸드크림과 립밤이 없을 수 없는 이유고, 외출을 했는데 가방에 핸드크림과 립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눈앞이 캄캄해지곤 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겨울이 되면 손의 보온과 습도(?) 유지에 온 신경을 쓴다.
일명 ‘금손’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내 손재주가 뛰어나진 않지만, 자잘하게나마 이런저런 손재주가 있어서 새우깡을 사 먹을 정도의 용돈을 벌고 있는데, 내게 그런 재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마도 초등학생 시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릴 적 우리 집 벽은 온통 낙서 투성이었다. 크레파스나 색연필이 손에 쥐어지면 보이는 데로 죄다 색칠을 하고 다녀서 벽지엔 알록달록한 색들로 마구 더럽혀져 있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회사에서 이면지를 가져오시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이면지를 채우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엔 예쁜 공주들이나 변신을 하며 악당을 물리치는 세일러문, 웨딩피치 같은 만화영화 주인공들을 그렸다. 하도 많이 그려서 나중에는 안 보고도 일필휘지로 슥슥 그려낼 정도였다. 아빠는 퇴근해서 올 때마다 이면지를 한가득 가져오셨는데 그러면 마치 새 스케치북이라도 생긴마냥 빈종이에 뭔가를 그려 넣을 생각으로 설렜었다.
그 당시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아마도 정신없으면서도 지루한 날들을 보냈던 것 같다. 시끌벅적한 삼 남매를 케어하고 집안 살림을 돌보느라 동분서주했지만, 모두가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인정해주지 않아 무료한 삶. 엄마는 마음의 빈 곳을 이런저런 취미로 메웠다. 식물을 가꾼다거나 미싱을 배우거나 뜨개를 하면서 말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수북이 쌓인 이면지 꾸러미를 꺼내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뭔가를 그리고 있으면 동생들도 하나둘 나를 따라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럴 때면 엄마는 커다란 베개를 등에 대고 앉아 바구니에 가득 담긴 실꾸러미를 꺼내 뜨개를 시작했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직물은 어느 날은 아빠의 스웨터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 되기도 했다. 가방을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만들 수 있다니!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나도 엄마를 졸라 뜨개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 뜨개의 목표는 분명했다. 그 시절 내 외출 필수품은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였는데, 그것이 쏙 들어가는 전용 가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실을 잡는 방법과 코바늘을 잡는 방법을 배우고, 한코 한코 뜨개를 시작했는데, 힘조절에 능숙하지 않아 처음엔 울퉁불퉁한 못생긴 직물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래도 손재주가 아주 없진 않았는지 곧잘 흥미를 갖고 뜨개를 계속했고, 우여곡절 끝에 엄마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내 미니카세트 가방을 나는 매일 학교에 메고 다녔다. 친구들이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내가 직접 떠서 만든 거라고 말하고 싶어서 은근히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가정시간에 뜨개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미 엄마에게 조기교육을 받은 터라 어려움 없이 1등으로 숙제를 제출해 냈다. 친구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뜨개를 완성했냐고 물으며 ‘손재주가 좋구나’라고 말해주었고, 그때부터 나는 나 스스로를 ‘손재주가 좋은 사람’으로 여기며 살았다. 어른이 되고 나니 진짜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차고 넘쳤고, 누군가 내게 ‘손재주가 좋네요’라고 말하면, 앞에 ‘자잘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그저 자잘한 손재주입니다’라고 부끄러워하며 답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추운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포근한 털스웨터의 냄새와 감촉이 느껴질 때마다 예외 없이 뜨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십 대 초반에는 목도리를 뜨면서 있지도 않은 남자친구에게 줄 생각에 들떴고, 손이 차가워지면 귀여운 벙어리장갑 뜨기에 도전하다가 엄지의 위치가 다소 묘한, 어딘가 기이한 장갑을 완성하기도 했다. 결과물이야 어떻든 간에 무언가를 완성하고 나서 남은 실과 또 채 완성하지 못해서 남은 실들이 집안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있음에도 나는 겨울이 되면 또 폭신한 새로운 실들에 눈길이 간다. 아직 무언가가 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엄청난 것이 될지도 모를 보드랍고 다채로운 색의 실들을 보며 귀여운 가방을 떠올리기도 하고 묵직한 털스웨터나 앙증맞은 조끼를 떠올려본다. 물론 이제는 그런 대형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보다는 간단한 컵받침이나 조그만 손가방, 머리끈, 수세미 같은 것들을 유튜브를 보며 조금씩 만드는 수준일 뿐이지만, 나중에 내게 시간이 아주 많아지면 대형 프로젝트에도 꼭 도전해보고 싶다. 아주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모습이 되더라도 성취감 하나로만으로 소중하게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번 겨울이 시작될 즈음에도 또 뜨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이미 벌려놓은 다른 일들이 많아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 근처 비어있던 상가에 뜨개방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는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또 드릉드릉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굳게 먹고 지나치곤 했는데(어차피 영업시간이 길지 않아 내가 그곳을 지나갈 땐 거의 매일 문이 닫혀있다), 다이소에 살 것이 있어서 갔다가 다양한 종류의 뜨개실이 있는 것을 보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사 와버렸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계획 같은 건 하나도 없이 그저 예뻐서 하나둘 집어담은 각양각색의 털실들. 당장 뜨개를 하고 싶어서 보송보송한 털을 가진 실로 무작정 코를 만들었고, 아무런 의미 없는 사각형 모양의 손바닥만 한 직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각형 직물은 쓰임을 찾다가 지금은 티코스터로 사용 중이다. 아직 털실이 많이 남아있는데, 저 실들로 무엇을 만들까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확신의 P). 최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카드가 두세장 정도 들어갈만한 작은 파우치를 구상하고 있다. 아, 물론 언제 만들기 시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처음에는 ‘겨울엔 왜 뜨개질이 하고 싶을까?’라고 지었었다. 그러다가 어느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는데, 뜨개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뜨개질’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떤 행위를 낮춰 부르는 말로 ‘질’을 붙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리나케 제목을 수정한 것이다. 내가 처음 ‘뜨개질’이라 했을 때는 뜨개를 낮춰 부를 의도도 없었거니와 한 번도 뜨개가 하찮은 일이라 생각하기는커녕 뜨개를 잘하는 사람들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볼 정도였는데, 어떤 말들은 익숙하게 쓰이는 만큼 자주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렇다. 직업이 ‘바리스타’라고 말하면 다들 잠깐 하는 아르바이트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알바 언제 끝나?’ 라거나 ‘알바는 몇 시간 해?’라는 말들을 들은 적이 많았다. 가끔은 ‘언제까지 알바만 할 거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지.’라고 속내를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잠깐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사대보험도 가입한 정식 직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전혀 가닿지 않고 연기처럼 소멸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오히려 공부를 아주 많이 해서 쉽게 가지기 힘든, 소위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자주 내뱉었다. 당연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마음에 담아둔다거나 호시탐탐 복수할 기회를 엿본다거나 그러진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상처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직업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사려 깊고 배려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또 다른 일종의 ‘공부’이고, 그것을 위해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다.
뜨개이야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 그림 그리고 놀던 이야기부터 사려 깊은 마음까지 주절주절 늘어놓게 되었는데, 이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참 내 맘 데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겨울에 왜 유독 뜨개가 하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고찰도 없이 그저 겨울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저 복슬복슬한 털실로 쓰임 있는 무언가를 또 완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두서없는 이 글을 급하게 마무리 지어본다.